꽃 이야기 171

각시붓꽃의 무도회장을 보는 나의 단상(斷想)

소중한 봄날의 무도회가 무르익어가고 무도회의 주인공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무도회의 본행사 직전 담소를 나눕니다.무도회 일정을 맡은 진행자들이 막바지 회의에 의견을 개진하고 바로 무도회의 개회를 알립니다.연습한 대로 지역대표들이 연합한 칼군무가 무도회의 절정을 알리고 소중한 봄날의 무도회가 끝날즈음,한적한 곳에 칼군무를 즐기던 홀로 온 각시붓꽃들이 막바지 무도회를 후회 없이 즐깁니다. 오래전 일 년에 한두 번 내지는 많으면 서너 번씩 킥오프 미팅 워크숍 또는 팀빌딩 명목으로 잦았던 출장이 귀찮던 그 시절 가끔은 그때로 되돌아가고픈 그리움이 봄의 절정에서 피어난 아리따운 각시붓꽃 멋쟁이들의 도란도란 수다스러운 밝은 모습을 보면서 잊혔던 추억 속으로 뛰어듭니다.

꽃 이야기 2023.05.15

환하게 웃는 국수나무 꽃을 바라보는 나의 단상(斷想)

반짝이는 별과 같이 앙증맞은 꽃과는 어울리지 않게 국수나무라는 생뚱맞은 이름의 국수나무에 하얀 꽃이 숲 속에서 환하게 웃어주니 어느새 계절은 숨 가쁘게 봄의 끝자락을 붙들고 여름 맞을 채비에 바빠지는 듯싶습니다.작은 송이송이 마다 꽃하늘소가 자리 잡고 꽃가루와 꿀을 탐하는 자연의 먹이사슬이 줄기 속에 하얀 국수 같은 속살을 품고 있어 국수나무가 되었다 하니 그 누군가의 관찰력이 꽤나 기발해 보이기도 합니다.꽃도 피기 전에 여린 줄기를 벗겨보고 누군가 적절하다 생각하고 이름 붙인 국수나무가 지금처럼 꽃이 피었을 때 그 누군가 꽃을 보고 이름 붙였다면 별꽃나무는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시의적절하게 다시 사물을 보고 세상을 본다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 또한 그렇게 흘러가기도..

꽃 이야기 2023.05.14

지금은 작약(芍藥)의 시간입니다.

이름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작약은 원산지가 중국이고 약재로 재배된 함박꽃인데 언제부턴가 모란과 나란히 모란이 지고 나면 만개하는 관상용 꽃으로 찾아옵니다.모란의 잎은 끝이 세 갈래로 나뉘지만 작약은 독야청정 한 잎 한 잎 늘씬하게 오로지 꽃몽우리 하나만을 떠받들고 모란이 꽃봉오리를 하나둘 만들 즈음 야무진 모습으로 단단한 꽃몽우리를 하늘 하늘한 줄기마다 하나씩 매달고오월이 시작되면 한 겹 한 겹 초록빛 외투를 벗어던지고 곱디고운 속살을 가슴 설레게 봄볕에 내맡기기 시작하니부지불식간에 탐스런 꽃몽우리를 사랑스럽고 가슴 벅차게 키우면서 봄의 절정에 올라, 봄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작약의 매력에 흠뻑 빠집니다.모란이 떠나간 빈자리를 작약이 빈틈없이 찾아와 우리의 봄을 완성하면서 다가오는 봄과의 이별을 차분하게..

꽃 이야기 2023.05.13

순백의 순결한 찔레꽃

뭐가 그리 바빴는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큰맘 먹고 오랜만에 나선 오후의 산책길이었지만 마치 한 여름같이 후덥지근해진 날씨에 잔뜩 눈살을 찌푸리다가 코끝을 자극하는 찔레꽃 향기에 끌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찔레꽃이 만발한 천변에 발길이 머뭅니다.갯버들 사이사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쭈욱 빼고 숲 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물가에 옹기종기 순백의 순결함을 고이 간직 한 채로 찔레꽃으로 연상되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꽤나 오래전에 지난 듯싶은 중3 시절 연합고사를 코앞에 두고 밤새 손에 잡았었던 중3이 읽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내용들이 포함된 신여성 김말봉을 대표하는 장편 통속소설 찔레꽃.찔레꽃의 주인공인 순결한 여인 가정교사 안정순이 생각나고, 김말봉이 작사하고 사위인 금수현이 작곡한 불후의 명가..

꽃 이야기 2023.05.12

사랑스런 꽃 살갈퀴

많이 주목받는 꽃은 아니지만, 천변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꽃.사랑의 아름다움이란 꽃말이 아니더라도 풀숲에 앙증맞은 분홍색 꽃이 사랑스럽습니다.농기구인 갈퀴를 닮아 살짝 어긋난 잎사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살갈퀴라고 불렀나 봅니다.나물로 먹으려는 듯, 옆에서 뚝뚝 꺾는 손길이 원망스럽네요. 그냥 두고 보면 좋을 텐데......

꽃 이야기 2023.05.11

말발도리꽃에 살어리랏다

꽃이 지고 맺는 열매가 말굽에 박는 편자를 닮아 예쁘장하고 단아한 꽃이 말발도리꽃이 되었습니다.그런 열매가 맺히도록 꿀벌과 꽃하늘소가 따스한 봄볕아래 애교 넘치는 꽃 위에서 봄의 풍류를 즐깁니다.길을 떠나 온 나그네가 오랜만에 햇살을 맞으며 활짝 웃는 말발도리꽃의 치명적인 애교에 붙들려 발길을 옮기지 못합니다.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수줍은 듯 고개를 잔뜩 수그려 땅을 보고 하늘을 번갈아보는 말발도리꽃의 애교 띤 눈길에 봄은 시나브로 깊어만 갑니다.

꽃 이야기 2023.05.10

이제는 당신을 고이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열흘 남짓했던 당신과의 추억을 이제는 고이 접어 사진첩에서나 가끔 꺼내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보내긴 정말 싫지만 이제는 당신을 미련 없이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늙어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은 욕심에 당신의 화려했던 모습들만 골라 남겨봅니다.막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노심초사 당신이 떠나갈 날이 멀지 않았음에, 비가 내리는 밤이면 꽃잎이 상할까 걱정되었고 하루종일 비가 내릴 때면 커다란 목을 잔뜩 수그리고 그 비를 꼼짝없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을 당신 생각에 마음을 졸이곤 했었지요당신이 설익은 꽃몽우리에서 두터운 겉옷을 한 자락씩 걷어내며, 탐스런 꽃봉오리로 변신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당신을 고이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음 봄에는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 이야기 2023.05.09

봄을 유혹하는 등나무꽃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 되는 두물머리 한 귀퉁이 등나무가 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매혹적인 자색빛 꽃을 피운다송알송알 옹기종기 활짝 웃음 지으며 따스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한껏 맞는 등나무 줄기마다 탐스러운 꽃송이가 온갖 시름 내려놓고 쉬었다 가라 하네초록 바탕에 연보라 수를 놓은 듯 하늘을 가리고 한강을 감춘 채로 봄은 절정을 향해서 줄달음 친다

꽃 이야기 2023.05.05

현호색(玄胡索)과 세 번의 짜릿한 조우(遭遇)를 경험한 나의 단상(斷想)

봄의 전령사로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현호색과의 첫 번째 조우(遭遇)는, 이년 전 이월 중순경쯤 오산의 물향기 수목원에서 복수초와 설강화를 찾다가, 우연히 보라색 현호색을 만나 반갑기보다는 신기했던 기억이 기분 좋은 추억이 되어, 지난 이월 중순 다시 찾은 물향기수목원에서는 아쉽게도 현호색을 만날 수가 없었다.그리고, 현호색과의 두 번째 조우(遭遇)는, 지난 삼월 하순경 한라산 1100로 제주시와 인접한 휴게소 공중화장실 옆 공터에서 비에 잔뜩 젖어 힘겨워하던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역시나 신기함을 뛰어넘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기에, 봄비를 맞아가며 힘겹게 눈맞춤 했던 기억이 새롭다.현호색과의 세 번째 조우(遭遇)는, 지난주 비 내리는 정선의 만항재에서 띄엄띄엄 보이다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비..

꽃 이야기 2023.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