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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익어가는 가을밤

어스름 내린 도시 위로아파트 숲 사이로 고개 든 빛오늘도 길었던 하루를 지우며밤하늘이 나직하게 숨을 쉰다한가위 대보름을 닷새 앞두고반쯤 채운 얼굴로 찾아온 달서두르지 않고 결을 가다듬으며기다림의 설렘을 은은히 전한다무채색 밤하늘에 새겨진 자국달의 바다와 크레이터의 숨결까지빛과 그림자가 단단히 엮어낸지난 시간의 무늬가 오롯하다조금씩 차올라 마침내 차오를둥근 만월의 약속을 믿으며지친 가슴 한구석에도 조용히따스한 희망 한 조각을 채운다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언제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외롭지 말라며 밤길을 비추는저 달의 다정한 온기를 느낀다여백을 채워갈 닷새라는 시간우리네 마음도 더 깊고 넓어져다가올 보름날의 환한 빛처럼모두의 소망이 아름답게 결실 맺기를

가을 이야기 21:41:31

​쑥부쟁이 일로번창(一路繁昌)

​며칠 전만 해도바위틈 비좁은 자리에외로이 달랑 한 송이고개 내밀던 너였거늘,​어느새 바람 끝을 타고다정한 동무들 불러 모아어엿한 보랏빛 가문을당당히 이루었구나.​햇살 머근 연보라 꽃잎에노란 심장 하나씩 고이 품고바위턱 거친 세상도 아랑곳없이환한 웃음으로 일가를 이루네.​가녀린 줄기 마다마다푸른 꿈 채워 펼쳐내니오가는 길목 밝히는너의 걸음걸음이 곧 일로번창이라.계절의 모퉁이에서 만난 쑥부쟁이 한 송이가 며칠 사이에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모습입니다.척박한 바위틈에서도 굴하지 않고 제 세력을 넓혀가는 그 생명력과 굳건함이 참으로 눈부십니다.​작고 소박한 시작일지라도 끝내 커다란 결실을 맺어가는쑥부쟁이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도 나날이 번창하고 넉넉해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해 봅니다.

꽃 이야기 15:02:36

​나를 닮은 잎사귀 하나

계절의 모퉁이에서 만난 붉은 잎 하나.빛나던 여름날의 짙은 녹음은 어느덧 지나가고,비바람 맞으며 견뎌온 시간들이 잎사귀 표면에 검은 반점과 작은 상처로 아로새겨졌습니다.​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마치 살아오며 겪어낸 수많은 파도와 내 안의 깊은 흉터들을 닮은 것만 같습니다.​하지만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그 모든 흔적을 품고서도 여전히 세상을 환히 밝히듯 가장 뜨겁고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상처조차 삶의 깊이가 되고 훈장이 되는 시간.비록 비바람에 조금 닳고 비어버렸을지라도,치열하게 견디어 온 나만의 계절은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가을 이야기 12: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