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바빴는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큰맘 먹고 오랜만에 나선
오후의 산책길이었지만
마치 한 여름같이
후덥지근해진 날씨에
잔뜩 눈살을 찌푸리다가
코끝을 자극하는
찔레꽃 향기에 끌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찔레꽃이 만발한
천변에 발길이 머뭅니다.
갯버들 사이사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쭈욱 빼고
숲 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물가에 옹기종기
순백의 순결함을
고이 간직 한 채로
찔레꽃으로 연상되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꽤나 오래전에 지난 듯싶은 중3 시절
연합고사를 코앞에 두고
밤새 손에 잡았었던
중3이 읽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내용들이 포함된
신여성 김말봉을 대표하는
장편 통속소설 찔레꽃.
찔레꽃의 주인공인 순결한 여인
가정교사 안정순이 생각나고,
김말봉이 작사하고
사위인 금수현이 작곡한
불후의 명가곡 그네까지 연상됩니다.
그리고,
김말봉의 외손자인
천재 지휘자 금난새 까지도......
이렇듯 찔레꽃은
김말봉의 소설이 되고,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란 꽃말처럼
두 차례나 겪어야 했던 남편과의 사별이
신여성 김말봉을 고독하게 했겠지만,
두 번의 사랑은 신중했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사위 금수현과 그네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찔레꽃의 진정한 의미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통속소설 속의 주인공인
안정순이 지켜낼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순백의 아름다운 순결이었지 싶습니다.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신여성으로서의 당당함을
김말봉은 소설 찔레꽃을 통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짙은 향기로 유혹하는
순백의 찔레꽃을 보면서
머잖아 떠나갈 봄이 벌써 그립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갈수록 짧아지는 듯싶은
봄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곧 닥칠 역대급 폭서에 속수무책인
용광로 같은 여름을
살짝 뛰어넘고 싶은
간절함을 품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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