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야기 23

낙강물길공원 만추(晩秋)

2023. 11. 19.언제부턴가부터 나그네에게 안동의 낙강물길공원은 가을을 기꺼이 전송하는 장소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안동댐의 낙차를 이용한 무동력 분수가 상시 가동되고 있기에,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바로 낙강물길공원인데, 습한 환경 때문인지 수변에는 철마다 꽃이 피고, 늦은 가을이면 오염되지 않은 숲에서 이국적인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인 곳이기에, 낙강물길공원은 가을을 보내는 장소로 제격인 듯싶습니다.안동 시내에서 월영교를 지나 댐 아래로 직진하면 오래지 않아 왼편에 낙강물길이 숨어있고 오른쪽에는 40여 대의 승용차를 주차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말끔한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습니다.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입장료는 물론이고 주차료도 무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널리 홍보되지 않아서 그..

가을 이야기 2023.11.26

전주 덕진공원 만추(晩秋)

2023. 11. 15.나그네가 알고 있는 연꽃의 성지 중 한 곳인 전주의 덕진공원도 계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텅 빈 연못 위에 화려했던 연꽃 대신 시들대로 시들어 버린 연잎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운 연화정도서관이 사시사철 고고한 자태로 덕진공원의 공허한 만추를 바라봅니다.연지정을 비롯해서 연못 중간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들은 계절이 가고 오는 것에는 일도 관심 없는 듯 따사로운 가을볕에 물든 채로 만추의 광활한 덕진공원 연못을 넉넉하게 지켜봅니다.언제 연꽃으로 가득 채웠었냐는 듯이 여름 내내 속내를 감추고 있던 연못이 활짝 열리고, 연못 바닥을 비추는 늦가을 태양이 눈부시게, 가는 가을을 기꺼운 마음으로 온몸으로 환송하고 있습니다.애기단풍도 붉다 못해 노란색으로 ..

가을 이야기 2023.11.25

모악산 금산사의 만추

2023. 11. 15.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찾아온 금산사는 작년 보다도 오히려 가을이 더 일찍 떠나려는 듯싶습니다. 이번 가을만 짧아진 것인지, 아니면 점점 길어지는 겨울을 예견하는 서곡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은 아직도 눈이 시리게 높고 푸르건만, 떨어진 낙엽은 어느새 대부분 사라지고, 하나 둘 겨우 매달려 있는 낙엽이 애처롭게 보이는 옷 벗은 나무들이 허전하고 쓸쓸해 보입니다.그나마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수고한 가을을 아름답게 보내주려 애쓰는 모습이 작년 분위기와 비슷한 공원의 넉넉하고 편안한 품에서 잠시 머물다 일주문으로 향합니다.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과 미륵전을 지나 오 층 석탑이 있는 탑사위로 올라가 석탑 앞에서 잠시 소원을 빌고, 탑사 아래 보이는 웅장한 대웅전과 미륵..

가을 이야기 2023.11.23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의 만추(晩秋)를 찾아서

2023. 11. 14.전주 하면 대개는 한옥마을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나그네는 수목원(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한옥마을 같은 주차전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분주한 거리의 복작거림도 없이 주차도 편하고 너른 수목원에 아무리 많은 인파가 몰려와도 언제나 여유롭게 자연과 벗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료 주차에 무료입장이라는 덤까지 선물 받을 수 있는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이 가을의 전성기를 지나 만추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계절로 돌아왔습니다.제일 먼저 찾곤 하는 장미원의 장미의 뜨락에 서서 눈부신 파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빨간 가을장미와 먼저 눈 맞춤을 합니다.장미원 중앙의 아치에 매달려 화려함을 뽐내는 노랑장미 또한 가을장미의 기품을 간직한 채 눈부시게 파란..

가을 이야기 2023.11.22

탄천(炭川)의 가을

갯버들 꽃을 시작으로 매화와 벚꽃과 개나리와 노랑꽃창포와 찔레꽃이 한겨울부터 한여름까지 탄천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가을 코스모스가 찾아오면 어디 숨어있다 나오는지, 단풍 든 나무들이 탄천의 가을을 시나브로 깊어가게 만듭니다. 정자교 붕괴사고 이후, 점점 뜸해지던 탄천 산책이 여름을 핑계로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가, 예쁜 가을 하늘에 무장해제된 채로 어느새 탄천 죽전교와 대지교를 지나 오리교와 미금교를 지나면서, 아무런 잘못도 의지도 없이 소중한 생명을 잃어야 했던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과 불과 1년 전 오랜 코로나19 펜더믹에 갇혀 지내던 젊은이들이 축제에 참가했다는 이유 하나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기막힌 현실과 출근길에 다리 붕괴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안타깝고 끔찍한 안전사고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있는..

가을 이야기 2023.10.28

결실(結實)의 계절 가을(3) (맥문동 열매)

초여름부터 터뜨리기 시작한 보랏빛 맥문동 꽃이 가을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꽃잎을 거두고, 초록빛으로 맺기 시작한 열매가 깊어가는 가을 속에 흑진주의 모습으로 여전히 푸르른 잎사귀 사이에 자리하고, 눈 내리는 겨울을 기다립니다.겨울이 오기 전에 까맣게 익은 열매가 한겨울 눈 속에서 반짝이는 모습에서 맥문동의 풍미를 한층 더하겠지요. 온갖 모진 세파 속에서도 반만년을 이어 온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가 함축된 듯싶은 단단한 맥문동 열매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절망과 탄식으로 이어지는 작금의 시간들이 어쩌면 한겨울 눈 속에 갇혀 얼려있는 맥문동의 새까만 열매와 동병상련하는 심정으로 어제 보다 더 견디기 힘들고 한결 더 참담할 수도 있는 예측하기 힘든 나날들을 하릴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그말리온..

가을 이야기 2023.10.27

결실(結實)의 계절 가을(2) (범부채 열매)

잎의 모양이 부챗살처럼 붙어 있고 꽃잎의 얼룩 반점이 마치 표범의 무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장마 속의 대표적인 여름꽃 중의 하나인 범부채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알보석 같은 모습으로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맞습니다.이렇게 범부채는 여름 한철 예쁜 꽃을 피우고, 다음 해를 조용히 준비하는 여러해살이 초본식물이기에 가을이면 어김없이 새까만 포도송이 같은 열매가 맺혀 조금씩 익어가며 추운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으며 습기가 제거된 열매가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져 새순을 돋우며 한여름의 열정적인 짙은 주황의 꽃을 피우며 한여름 아침을 아름답게 꾸며주다 해가 나오면 수줍게 꽃잎을 돌돌 말아 긴 여름 한낮을 보내고, 밤새 꽃잎을 조금씩 다시 펴다가 아침 이슬에 꽃잎을 활짝 열어주는 범부채의 고단한 삶의 이면은 알지 못한..

가을 이야기 2023.10.26

결실(結實)의 계절 가을(1) (산수유 열매)

이른 봄부터 매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에서 갓 깨어난 샛노란 병아리 같이 시커먼 나뭇가지에 잎이 채 나오기도 전에 꽃 눈을 틔우며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던 가냘픈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우고, 그 꽃을 찾아다니다 이천 백사의 산수유마을까지 달려갔던 삼월로부터 반년이 훨씬 지나고, 겨울의 문턱 입동(立冬)을 불과 이십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어느새 야리야리한 꽃 과는 달리 탱탱하게 익어가는 산수유 열매를 바라보며 또다시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 싶어 집니다.새까맣게 쪼그라들어 버린 볼품없어진 작년의 산수유 열매가 작은 점처럼 새로이 풍성하게 매달린 산수유 열매와 함께 하는 모습에서 불현듯 나그네의 모습이 겹쳐 보이고 동병상련하는 애처로운 초연(超然)함으로 가을을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합..

가을 이야기 2023.10.25

대추가 익어가는 9월 첫날 새벽 나그네의 단상(斷想)

지루했던 6~7월의 장마가 끝나고, 역대급 폭염 속에서 8월을 보내고, 지난 며칠간 가랑비가 수시로 내리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엄습하고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른 추석에 뒤쳐질세라 다복하게 매달려있는 튼실한 대추가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온몸을 맡깁니다. 새삼 "세월 이기는 장사는 없다"라고 어릴 적부터 늘 듣던 어른들의 넋두리를 이제는 나그네가 그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지루했던 장마 속에서도 꿋꿋하게 가을의 결실을 위해 만발했던 대추꽃이 비바람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던 안타까움은 한낱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음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가냘픈 꽃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던 그 자리에 풍요를 상징하는 탐스런 대추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비록, 눈앞의 현실이 비바람과 폭염으로 지치고 힘들지라..

가을 이야기 20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