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후에·다낭 이야기 14

퍼퓸 파고다(Perfume Pagoda)

하노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하노이 퍼퓸 파고다는 베트남 현지인들이 CHUA HUONG(흐엉사)라고 부르는 곳으로, 주변에 다른 여러 사원들이 몰려 있기도 해서 명절엔 길이 막힐 정도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음력 1월1일부터 3일까지는 현지인들이 한해의 건강과 사업발전 특히 득남하고자 하는 젊은 여인네들의 발길이 넘친다고 한다. 즉, 하노이 현지인들이 가장 가고파하는 곳이 바로 흐엉사, 퍼퓸파고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한국의 여행사들이 패키지 프로그램에 포함시키지 않아서 그런지 비교적 한적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퍼퓸 파고다는 옌강에서 6인승 보트를 타고 약 1시간 정도를 마치 조화 같아 보이는 짙은 분홍색 수련 사이를 지나 가을 향취가..

다낭 미케비치(My Khe Beach) 에서의 변신

누구는 세계 4대 해변의 하나가 다낭의 미케비치라 하고, 혹자는 세계 6대 해변의 하나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케비치가 세계 7대 해변에 손꼽힌다 주장하지만, 어디에서도 공인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케비치는 비가오거나, 일출이 시원찮아 노을만 조금 비추거나, 먹구름이 잔뜩 한을 품고 있거나, 한낮의 찜통 더위에서나 할것없이 여유롭고 자애롭게 인간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보기드문 멋진 풍광이 그곳에 있었다. 또한, 깜깜한 밤은 밤대로 운치가 있어 사람들의 혼을 쏙 빼어갑니다. 특히, 연인들이 마치 설탕가루 같이 미세하게 고운 해변에 나란히 앉아 맥주 한캔 기울이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 미케비치의 푸른빛은 신비롭기까지 했고, 지나가는 동남..

후에 강(흐엉 강, 퍼퓸리버, 香 江)에서의 해넘이

후에 강에서 맞는 아침도 색다를듯 싶어 밖을 보니 먹구름이 두껍게 하늘을 덮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 7시 부터 하루종일 비가 잡혀 있었다. 오늘 오후에 다낭 가는 길도 비와 함께 해야할 듯 싶다. 다낭도 하루종일 비가 잡혀 있으니, 다 내려놓고 오늘 하루는 후에와 다낭의 멋진 비를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오후 네시 반 부터 후에 강 철교에서 일몰시각 까지 50여분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구름에 잔뜩 가려진 태양이 만들어준 멋진 저녁 노을에 흠뻑 빠졌다가 다리 교각위의 가로등이 하나 둘씩 들어 올때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행복을 그대로 가슴에 쓸어 담고, 초저녁 부터 축구 열기에 휩싸인 거리를 지나 호텔로 돌아와 박항서 매직을 다시 실감하면서 후에에서의 멋진 밤을 보냈다.

후에 황성의 이모저모

후에 황성(Hoàng thành Huế)은 1802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약 143년간 응우옌 왕조의 궁궐 역할을 했던 곳이다.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후에는, 유적 전체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 파괴된 유적들의 복원, 보존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궁궐 내부는 물론이고, 궁궐과 궁궐을 잇는 공간들도 마구 파헤쳐저 있고, 공사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도 상당히 눈에 많이 띠었다. 호이안에 있는 참파왕국의 미썬 유적지도 베트남의 기술부족으로 십년째 복구를 못하고 지지부진하고 있다하니, 이곳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듯 싶어 마음이 짠해짐을 느꼈다. 가능하면, 방치된듯 보이는 미복구된 지역을 피해서 영상을 만들어 후에 황성을 소개해 본다. 관람하는..

후에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왕릉 방문기

후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Than Hoa)로 불렸으며,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수도가 된 이후부터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최대 격전지가 되어 왕도 대부분이 황폐해졌는데, 1990년대 들어 지방 정부가 후에의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해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한다. 1687년 후에에서 5km 북동쪽에 있는 바오 빈(Bao Vinh) 마을에 도시의 성곽이 건설된 이후, 1744년 응우옌 씨(阮氏)를 가문으로 하는 남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1802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응우옌 왕조를 건국한 쟈롱 황제가 후에를 수도로 정하였으나, 1885년 프랑스는 통..

흐엉강을 거슬러서 티엔무 사원까지

너무나 화창한 흐엉 강에서 용선을 타고, 티엔무 사원으로 가는 뱃길따라 강변의 나무들과, 강변 마을의 야트막한 산들이 연출하는 데칼코마니가 너무 예뻐 연신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고 있을 즈음, 베트남인 가이드가 다가와 눈앞의 다리를 올려다보며, 1972년도에 폭격으로 주저앉았던 다리를, 1973년에 한국사람이 다시 만들어준 다리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한마디 덧붙여서, 만들어진지 45년, 거의 50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국이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억하고 싶지않은 나쁜 기억이나 불리한 기억은 빨리 잊으려는 무의식이 작용한다 하더니, 아마도 한국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대부분 베트남 국민들도, 모르긴 몰라도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대에 대한 나쁜 기..

오행산(마블 마운틴)

베트남인들의 민간 신앙을 대변하는 산으로 물, 나무, 금, 땅, 불을 상징하는 5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산 전체가 대리석이기 때문에 마블 마운틴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호이안 중심가에서 차로 약 2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물을 상징하는 투이 선(Thuy Son)이 핵심으로 산속 둥굴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옆의 가이더가 안내하는 귀동냥에 의하면, 월남전 당시 미군이 이곳 동굴에 은신해 있는 베트콩을 섬멸하려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였고, 이에 한국 해병대가 미군을 대신해 베트콩을 전멸시켰다고 흥분해서 해설을 하는걸 듣자니, 베트남의 역사에 우리가 큰 죄를 지은것 같은 미안함이 앞섰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위치하여 논 느억(Non Nuoc) 마을과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전망대 아래 동굴입구..

미썬 유적지를 비와 함께

호이안 중심가에서 40km 떨어진, 투본 강 유역 정글에 위치한 미썬 유적지는 참파 왕국의 성지였었다고 한다. 본 유적은 4세기 말 참파 왕이 시바신을 모시는 목조 사당을 지으면서 조성되기 시작했으나, 화재로 소실된 후 7세기에 들어 벽돌로 재건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베트남 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대부분의 유적지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흉물스러운 녹슨 포탄은 1969년 미군의 폭격으로 75% 이상의 건물이 파괴된 이래로 상징적으로, 다시는 이와같은 치욕을 겪지않겠다는 베트남 사람들의 혼을 일깨우기 위해 포탄이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의 안팎에 모셔진 수많은 시바신은 한결같이 목이 잘린채로 슬프게 자리하고 있었다. 프랑스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모든 시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