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171

괴불주머니 꽃의 천국

2023. 04. 26.백두대간이 지나는 정선의 봄은 이제 막 시작되는 듯, 산속의 연분홍 벚꽃과 목련이 절정을 맞고 있었고, 길섶 여기저기에 노란 괴불주머니 꽃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노랑노랑합니다.동네 산책길을 걷다가 가끔 눈에 띄어 반갑던 (귀한)괴불주머니 꽃이 지천으로 깔려있으니, 그냥 눈으로 즐기면서 어느 한곳에 집중 못하고 더욱 풍성한 군락을 찾아 마치 왕이 왕비를 간택하듯 한껏 흥분되면서도 신중한 마음으로 정선을 누빕니다.앞에서 옆에서 위에서 괴불주머니 꽃은 보는 방향과 눈높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정선소금강 전망대 청단풍나무 아래 아기자기한 계곡과 기암괴석을 올려다보면서 경사진 둑방에 가득 핀 정선 괴불주머니 꽃은 정선의 봄을 대변하는 백미 중의 백미가 아닌가 싶습니다.전혀 ..

꽃 이야기 2023.05.02

만항재(晩項齋)의 얼레지꽃

2023. 04. 26.지리산에는 천은사에서 시작되는 해발 1102미터 높이의 성삼재를 자동차로 갈 수가 있고, 한라산에는 어리목탐방로와 영실탐방로 사이를 자동차로 지날 수 있는(혹은 제주시에서 서귀포 중문을 연결하는) 1100로의 정상에 1100 고지가 있지만,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와 태백시 혈동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함백산에 위치한 해발 1,330m에 도로 경사가 10%로 매우 가파른 만항재(晩項齋)라는 고갯길입니다.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닐 정도로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풍성하게 피어나고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밀려들어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멋진 곳이기도 합니다.주로 높은 산에서 서식한다는, 잎..

꽃 이야기 2023.04.30

모과꽃 피는 계절에 붙임

봄이 한 달 당겨와 오월의 꽃이 사월에 만개하니 연홍색 모과꽃도 사월에 활짝 핍니다못난이 과일 취급받는 모과를 어물전의 꼴뚜기 반열에 세워놓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했다지요"시거든 떫지나 말지"라는 속담도 모과가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가을이면 노랗게 농익어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모과지만 육질도 너무나 단단하기에 새들도 즐겨 먹지 않는 듯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향긋한 모과차나 모과주는 삭막한 한 겨울에 작은 위안을 안겨줍니다어찌 보면, 홍련을 연상시키게 하는 모과꽃은 개성 있는(못난이) 열매를 맺기 위해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잊지 않고 한 달 먼저 우리 곁으로 와주었는지도 모릅니다만개한 모과꽃이 빗방울을 못 이기고 떨어지고 바람에 못 견디고 떨어질 즈음 봄도 우리 곁을 훌쩍 떠나가버리겠지요지..

꽃 이야기 2023.04.24

서로 닮은꼴인 아그배나무꽃과 꽃사과나무꽃의 차이점에 대한 나의 단상(斷想)

고려 충혜왕 때 문신이자 안향(安珦)의 제자인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는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은하수가 흐르는 자정 무렵, 달빛에 비친 배꽃이 희다)"로 시작됩니다.아그배나무 꽃도 배꽃 못지않게 하얗기에 이조년의 다정가 첫 구절을 인용해 본 것인데, 아그배나무는 이름만 배나무이지, 실상은 배나무라기보다는 사과나무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본래 '아그배'라는 이름은 꽃사과 보다 작은 열매가 배처럼 노란색을 띠고 있기에 '아기배'라 부르다가 점차 아이배를 뜻하는 방언인 아그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그배나무와 꽃사과나무의 꽃은 너무도 흡사하게 생겨서 구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그배..

꽃 이야기 2023.04.23

산딸기꽃이 있는 봄

이른 봄부터 산책로 둑아래 경사지가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봄을 맞습니다. 작년 봄에 보던 들꽃들이 거의 사라지고, 까까머리 풀밭 위는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뭔가 잃어버린 듯 휑한 풀밭 위에 잘려나간 풀들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을 뿐, 봄에 어울리는 봄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행히도 둑 가까이 경사지 끝 부분에 있는 산딸기나무는 건재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분홍의 청초한 꽃이 봄비에 촉촉이 젖어 여린 꽃잎이 살포시 수줍게 열고 있습니다.이렇게 힘겹게 피어난 꽃들이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다섯 장의 꽃잎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꽃들이 얼마 되지 않은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개 남은 꽃잎 위에 호리꽃등에가 내려앉아 꽃가루를 옮겨주는 덕에 여름이 오면 빨간 산딸기가..

꽃 이야기 2023.04.21

탄천의 봄에 환상적인 튤립을 대하는 나의 단상(斷想)

오랜만에 청명한 공기를 마시면서 탄천으로 나왔다. 탄천 서쪽 산책길을 따라 죽전교를 지나고 오리교를 지나서, 인도교 붕괴사고로 통행이 금지된 정자교 앞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무심코 동편 산책길을 따라 멋진 아치모형의 신기교 아래를 지나자, 눈을 의심할 만큼 한껏 만개한 튤립이 금곡교 앞까지 장관을 이뤘다.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풍경 앞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신기교에서 금곡교를 여러 차례 튤립들과 거리를 두고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원거리에서 튤립과의 눈 맞춤을 이어가다가, 가까이 다가서며 본격적으로 튤립들과의 대화를 시작했다.대장인듯한 튤립이 멋진 파티복을 차려입고, 준비 없이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형형색색의 다양한 튤립들이 따가운 봄 햇살 아래 눈부시게 탄천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

꽃 이야기 2023.04.20

💐수선화의 간절한 소망💐

새벽부터 기다리던 봄비가 드디어 살짝 창을 적시고, 수선화가 두 팔 들어 반깁니다.언제부턴가 중간 없는 현실세계에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 들고중용지도(中庸之道)의 덕은 온 데 간데 없어져 극한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승자독식이 미덕이 된 지 오래됐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막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봄가뭄을 극복하게 하고 만물이 소생하기에 적합한 단비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봄비가 심하게 내리면 풀이 죽을지도 모르는 봄꽃들이 살짝 걱정되지만 착한 봄비가 되길 소망합니다.봄꽃이 많이 상하지 않도록 젠틀하게 종일 내려주기를 수선화가 간절한 마음으로 봄비를 영접하는 아침입니다.

꽃 이야기 2023.04.18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 매자나무에도 꽃이 피었네요

초록잎 사이에 가시를 숨기고 고운 얼굴 햇볕에 그을릴까 고운 얼굴 누가 훔쳐나 볼까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바라봅니다.경기도 이북지역이 고향이지만 붉은 자주색 일본매자나무와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요조숙녀 나무랍니다.살짝 가지를 들추고 숨어서 핀 꽃을 보려 하니 어느새 손끝이 찌릿한 것이 가시에 찔려 손끝이 따끔따끔하더이다.옛 여염집 아낙네가 신변보호용으로 가슴에 은장도를 품고 있었듯이 매자나무 아씨 또한 은장도 같은 가시를 품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오월이나 되어야 피는 꽃인데 한 달 일찍 만개한 것은 올봄의 기상이변 때문이겠지요!어차피 올봄은 이미 와 있으니 올해만 사월에 피고 내년부턴 오월에 피어났으면 하는 작은 소망으로 매자나무꽃을 만나봅니다.

꽃 이야기 2023.04.17

🌺봄비 속에 활짝 핀 만첩홍도화(萬疊紅桃花)를 무심코 바라보는 나의 단상🌺

순수한 복사꽃도 예쁘건만 인간의 지나친 욕망이 겹복사꽃을 만들어 놓고,만 겹의 분홍색 복사꽃이라 얼토당토않게 터무니없이 만첩홍도화라 이름 붙여놓았습니다.복사꽃 본연의 수줍고 청순한 봄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화려하기 그지없는 천상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간의 지나친 욕망이 만들고 만첩홍도화라 이름 붙여놓은 겹복사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얼마 전 협재해변에서 보았던 자연 그대로의 복사꽃이 그립습니다.자연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이 과학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건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연의 참질서를 지키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더 이상은 지구촌의 자연이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욕망의 실험실에서 벗어나,260여 년 전 선지자..

꽃 이야기 2023.04.16

뜰보리수꽃이 보이는 풍경

앞을 다퉈 피고 있는 봄꽃 틈바구니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질서 있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해맑은 뜰보리수가 이파리 사이사이에 하얀 손을 내밉니다타임머신을 탄 여행이었던지 삼주가 훨씬 지난 쇠소깍에서 제대로 익은 뜰보리수 열매가 또렷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데직선거리로 사백여 키로 떨어진 뜰에서는 겸손하게 막 개화를 시작한 뜰보리수꽃이 빨간 열매를 맺기 위해 꽃잎을 열어줍니다한 달 일찍 개화한 뜰보리수꽃도 기상이변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때문이라 생각하니 우울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빨간 열매만큼은 유월에 봐야 할 텐데 열매도 꽃처럼 한 달 먼저 올 듯싶네요아직 오므리고 있는 꽃봉오리가 오월에 활짝 펴주길 바라봅니다.다행히도 아직은 꽃봉오리가 더 많이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달콤하게 익은 빨간 열매의..

꽃 이야기 2023.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