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37

산골살이 체험일지(16)

2024. 10. 03.아침부터 투둑투둑 가을비는 내려오고 빗속에서 둔탁하게 들려오는 소리따라 마당지나 대문옆의 작은밭에 들어서니 이따금씩 툭툭툭툭 떨어지는 큰밤송이 집개들고 하나둘씩 밤송이를 모아놓고 여기저기 나뒹구는 둥근알밤 집어든다잠깐사이 대두한되 족히되는 밤을얻고 축늘어진 감나무의 수고스럼 덜어주니 비를막고 밤송이를 막으려던 우산속에 밤과감을 대신담고 차가워진 가을비는 온몸으로 받으면서 비내리는 개천절에 하늘이준 선물받고 나그네는 미소짓네

나의 이야기 2024.10.10

산골살이 체험일지(15) - 사과대추

2024. 09. 12.늦은 봄, 눈이 내리듯 하얗게 꽃을 피우더니 비바람에 근근이 잘 견뎌내다 완두콩 같은 작은 대추를 매달고 폭염 속에서도 무럭무럭 잘도 자라 주었다. 동네 지인이 와서 한마디 한다. 하우스에 키운 사과대추보다 실하게 더 많이 열렸단다. 추석 지나고 시월중순쯤 익을 것 같다고 한다. 한번 연 가지에는 더 이상 대추가 열리지 않으니, 가지 치기를 해줘야 한단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대추나무에게 미안했다. 자세히 보니 하얀 가루가 묻었다. 나뭇가지 끝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무당거미가 대추를 잘 지켜준다고 믿었는데 무당거미도 저 하얀 해충은 막지 못했다. 뜨거운 아침 햇살을 견디며 한 알 한 알 대추를 따기 시작했다. 아주 파랗지 않으면 그럭저럭 과즙도 있으니 사과맛 나는..

나의 이야기 2024.09.17

산골살이 체험일지(14) - 폭염 때문인지, 나는 법을 잃어버린 암끝검은표범나비의 비애(悲哀)

2024. 09. 11.암끝검은표범나비 한 마리가 힘없이 마당으로 내려와 앉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푸드덕거리고 날듯 날듯 날지 못한다스마트폰 카메라가 더듬이에 닿을 듯 말듯해도 세상만사가 귀찮은 듯 무관심하게 이따금 앞발을 휘이휘이 휘젓다 내려놓는다. 마치 내가 작금의 빌어먹을 세상을 하릴없이 초연히 대하듯이........몸과 마음이 지쳐도 몸이 아파도 의지할 곳 없는 이내 신세와 어찌나 이리도 닮아있는지, 동병상련하는 마음으로 다시 날기를 기다려보건만 예상치 못한 폭염 앞에 속수무책 모든 걸 놔버린 듯싶은 암끝검은표범나비를 보면서 나를, 내가 처한 현실을 반추해 본다.

나의 이야기 2024.09.15

산골살이 체험일지(13)

2024. 09. 06.오후 늦게나 내린다던 가을비가 외출하려던 발길을 묶어두고 사납게 내리고, 혹시나 대추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나가보니, 빗속에 대추가 싱그리운 초가을 아침입니다.대추를 해충으로 부터 지겨주는 위풍당당한 무당거미는 허공에 매달려 온전히 가을비에 온몸을 내 맡기며 여전히 대추의 수호신이 되어줍니다.조금씩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대추들이 가을비에 쌓였던 먼지를 말끔하게 씻어내고, 다음번 가을비에는 푸른빛 보다 붉은빛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4.09.12

산골살이 체험일지(12)

2024. 09. 05.늦은 봄, 현관으로 연결되는 계단 아래 가냘픈 방울토마토 줄기 하나가 돌틈에서 솟아나기에, 뽑지 않고 넘어지지 않도록 줄에 걸어 놓았더니, 여름을 지나면서 계단 한편을 전부 차지하며 작은 숲을 만들어 놓았네요. 비료도 해충제거제도 물도 뿌려준 적 없건만, 스스로 영역을 넓혀나가는 경이로운 생명력에 찬사를 보냅니다.얼마큼 더 열매를 맺으려고 저리도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는 건지, 자연의 신비로움에 할 말을 잊습니다.

나의 이야기 2024.09.09

산골살이 체험일지(11)

2024. 09. 01.텃밭에서 선물 받은 호박과 양파와 들깻잎으로 생애 처음 가을맞이 된장찌개를 만들어봅니다.우선 냉동실의 제주 흑돼지 뒷고기를 해동해서 혹시 모를 잡내를 예방하기 위해 참기름과 맛술을 넣고 센 불로 꼬들꼬들하게 볶습니다.고기를 잘 볶아내고 된장찌개 소스를 물에 잘 풀어서 고기 위에 골고루 붓고 고기가 보일 듯 말 듯하게 물을 더 부은 다음, 잣을 둥둥 띄워서 끓이기 시작합니다.한 소금 더 끓인 후에 호박을 넣고 다시 끓여줍니다.다시 한 소금 끓인 후에 양파를 넣고 계속 끓여줍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린 들깻잎으로 마무리를 합니다.마침내 가을을 초대해도 될 만큼 맛있는 된장찌개가 완성되었군요. 많이 선선해진 산골짜기에서의 행복한 저녁이 시작됩니다.

나의 이야기 2024.09.06

산골살이 체험일지(10)

2024. 09. 01.20 여일 만에 텃밭은 잡초들이 정글을 이루고, 오랜 폭염 속에서도 잡초들의 그늘 아래, 어쩌면 금년에 마지막으로 볼지도 모르는 오이가 곱게 늙어 황금색 노각이 되어 가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한두 개 피기 시작하던 부추꽃이 하얀 부추꽃밭으로 바뀌어, 잡초를 이겨내고 환하게 웃으며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새끼손톱 만하던 대추는 엄지손톱 보다 훨씬 커다랗고 튼실하게 머잖은 가을을, 풍성한 한가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씨를 뿌린 적도 없는 호박이 텃밭에서 뻗어 나와 마당 한가운데에 보란 듯이 누워 있기에, 살짝 들어 올려 텃밭으로 돌려보냈더니, 일주일 만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대문밖 향기를 따라가니, 박주가리꽃이 환하게 피어, 이제는 더위가 한풀 꺾인 듯, 조석으..

나의 이야기 2024.09.03

산골살이 체험일지(9) - 대추가 익어가는 계절

다산의 상징 대추나무에 쌀가루 같은 꽃이 피더니 장마통에도 불구하고,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올망졸망 봄부터 시작된 사랑의 결실이 파릇파릇하게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꽃도 있건만 대추씨 만한 열매가 서서히 움트고 엄지손톱만 한 아이들이 조금씩 붉어지며 성급하게 가을을 기다립니다.햇볕에 노출이 많이 된 다 자란 아이들이 반은 붉게 익어가고 나머지 반도 저절로 익어 가겠지요. ............ 머잖아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대추가 검붉게 익어가면 정겨운 풀벌레소리와 더불어 산골짜기에도 시나브로 가을이 자리 잡겠지요.

나의 이야기 2024.08.12

산골살이 체험일지(8)

손바닥 만한 텃밭의 잡초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오이 삼 형제가 자라다가 땅에 막혀서 더 이상 뻗지 못하고 휘어진 모습으로 늙어가는 오이에서 굴곡진 인생의 데자뷔를 봅니다. 오이꽃은 또 오이를 맺으려고 동화책의 별과 같이 깜찍한 모습으로 잡초 속에서 존재감을 내보이며 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해맑아 보이던지, 불현듯 내 아이들 해맑았던 어린 시절의 데자뷔를 봅니다. 오이꽃 뒤에서 시나브로 늙어가는 오이의 모습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젊은 시절은 찰나에 지나가버리고 나도 모르게 세상의 뒤편에서 시나브로 늙어가면서 탄식만 늘어가는 불가항력적인 데자뷔가 보입니다.

나의 이야기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