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22.
선운사(禪雲寺)의 꽃무릇이라고 해야 할지, 선운산(禪雲山)의 꽃무릇이라고 해야 할지 갈등을 하다가 선운산의 꽃무릇이 마땅하겠다고 생각했던, 코로나 펜더믹 직전이었던 4년 전까지만 해도 선운사 일주문 이전에는 공중화장실 아래 계곡까지만 꽃무릇이 이어져 있었고, 대부분의 꽃무릇은 도솔암을 오르는 산길 양쪽에만 꽃무릇이 있었기에, 어렵잖게 선운산 꽃무릇이라고 제목을 붙였었는데, 코로나 엔데믹 이후 처음 찾은 선운사는, 일주문 앞까지 조성된 공원에 온통 꽃무릇이 가득하니, 기대하지 못했던 매우 낯선 풍경에 나그네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도솔암 가는 오솔길은 꽃무릇이 공원의 꽃무릇 에 비해 드문드문하게 보였고, 나그네의 발걸음이 선운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으로 봐도 선운사 꽃무릇이라 부르는 것에 전혀 갈등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추분이 코앞이라 해돋이가 많이 늦어졌고, 깊은 산속의 아침해는 한 시간 가까이 더 늦어지기에, 오전 7시경에 도착한 선운사 주차장에서 찬란한 아침해가 산등성이를 넘어오기 시작했고, 일주문 가기 전까지 조성된 공원에 가득 핀 꽃무릇도 지난 이틀간 내린 빗방울이 아직 남아있는 채로 아침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 가뜩이나 붉은 꽃무릇이 한층 선명하게 붉어지며, 꽃말 그대로 참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하늘을 등지고, 서쪽 선운사 방향을 바라보니, 높아져만가는 파란 가을하늘에 한가로이 노니는 하얀 구름 아래 꽃무릇이 눈이 부신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활짝 웃고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 피어난 꽃무릇이 한층 싱그럽게 보이는 것은 밤새 물알갱이들이 꽃잎 위에 날아와 꽃잎들을 정성스럽게 씻겨줘서 그런 듯합니다.
공원 초입에는 막 개화를 시작하는 어린 꽃무릇들이 청초한 모습으로 세상에 첫선을 뵈고 있습니다.
극락교 건너 계곡산책로 차밭 옆에는 활짝 핀 꽃무릇들이 온갖 표정으로 어디에 눈길을 둬야 할지 망설이는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계곡물 건너에 있는 동료들을 지긋하게 바라보는 꽃무릇들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없는 애틋한 심정을 눈빛으로 고스란히 전하려는 듯합니다.
계곡 건너 숲을 막연히 바라보는 꽃무릇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불평불만 없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주는 꽃무릇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후미진 곳에 외롭게 피어있는 듯이 보이는 꽃무릇은 어찌 보면 세상으로부터 점점 잊혀간다고 소외감에 젖어있는 나그네의 심정이 동병상련을 생각하게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곳에 피어 있더라도 똑같은 선운사의 꽃무릇이라 불러주리라는 자존감을 선운사의 꽃 무릇으로부터 한수 배우며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던 선운사의 꽃무릇 동산을 뒤돌아 보고 또다시 뒤돌아보며 아쉬운 발길을 천천히 돌립니다.
섞음 섞음 섞여사는 세상에서, 서로 헐뜯고 비난하여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나그네의 눈에 비친, 선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꽃무릇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하나 더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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