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 24

장맛비에 촉촉 영롱 훨훨

불과한뼘 도라지가 두달동안 잘견디다 장맛비에 보라꽃이 영롱하게 빗물얹고심은적도 없는방울 토마토가 올망졸망 신비롭게 매달리어 빗물먹고 영롱하고쭈글쭈글 볼품없던 뜰보리수 빨간열매 비바람에 주름펴고 통통하게 살오르고비바람에 스러져간 뻘쭘해진 당근꽃님 오랜만의 빗방울이 영롱하게 보석되고심은적도 없는오이 작년씨앗 발아해서 단비받아 무럭무럭 식탁에서 곧만나리먹물색깔 부전나비 빗사이를 훨훨날아 시나브로 시작되는 여름장마 즐기는듯새벽부터 빗소리와 바람소리 거세지고 물까치는 신이나서 이리날고 저리날고 빈둥지에 덩그마니 알한개를 남겨놓고 새끼들은 다자라서 둥지떠나 높이나네

여름 이야기 2024.06.24

수세미가 익어가는 여름

노란 꽃을 피우더니 어느새 길쭉길쭉 커다랗게 열매를 맺다가 다양하게 구부러지는 수세미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옵니다. 수세미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의미) 설거지할 때 그릇을 씻는 데 쓰는 물건. 예전에는 수세미외의 열매 속이나 짚 따위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주로 화학 섬유로 만든다."라고 합니다. 아마도 60대 이상에서는 수세미 하면 고유명사인 채소 수세미가 먼저 떠오를 테고, 요즘 세대를 포함 60대 미만의 청장년 세대들은 설거지할 때 그릇을 닦는 데 쓰는 물건으로서의 보통명사인 수세미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 시절 대문 밖 공동으로 이용하던 우물가에 설거지가 끝난 후 돌 위에 걸쳐놓았던 각각의 하얀색 수세미가 그리움으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새벽부터 이슬비와 보슬비가 교대..

여름 이야기 2023.08.12

병산서원의 한 여름 _ 새벽 여명(黎明)부터 해돋이까지

2023. 08. 06.저물어 가는 새벽 하현달이 병산서원 초입의 주차장에서 병산서원 복례문을 향하는 새벽길을 인도하고, 어스름한 새벽 공기는 제법 시원하건만, 마치 야생 고라니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이 숲이 우거지고 한산한 낙동강변길이 아직은 어둑어둑하건만, 어디선가 부지런한 닭들의 훼치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등뒤에 아스라이 풍산의 하회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화산봉과 부용대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 올 즈음 홀로 병산서원의 관문인 복례문 앞에 서 있습니다.어느덧 동쪽의 화산과 부용대 위 파란 새벽하늘 아래 붉은빛 여명이 조금씩 밝아오고, 만개한 복례문 앞 여름 병산서원의 상징이 되어버린 배롱나무 꽃이 희미한 여명에 물들어 서서히 불타고 있습니다...

여름 이야기 2023.08.09

안동의 랜드마크 월영교(月暎橋)의 한낮 풍경 스케치

2023. 08. 06.지난봄, 개통된 지 어언 20년을 넘긴 국내 최장의 목조다리인 월영교가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도 아랑곳 않고 선비의 고장이자 그들이 자부하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운 선비의 면모를 뽐내듯 숨 막히게 뜨거운 여름까지 담담하게 품고 있는 모습이 듬직해 보입니다. 한 달 전, 오랜 가뭄 끝에 허리까지 보이던 물이 폭염 전까지 지루하게 내린 비로 인해 아직 까지 황톳빛 물이 목까지 차있고, 월영교의 반달배도 개점휴업 상태로 흐린 물이 무심하게 월영교를 지나 낙동강으로 흐르고, 주변 카페는 줄을 서서 입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겨우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곳 카페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달콤 쌉쌀하고 시원한 안동대마라테 한잔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그렇다고, 마냥 카페에만 앉아 있기는 아쉬..

여름 이야기 2023.08.08

안동 체화정(棣華亭)의 폭염 속 이른 아침 풍경 스케치

2023. 08. 06.폭염에 아랑곳 않고 지금 체화정은 수백 년을 꿈꿔온 듯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심정으로 배롱나무(백일홍나무, 간지럼나무)와 뜨거운 사랑에 빠져있습니다.그러나, 체화정 턱 밑의 상사화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배롱나무와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 체화정을 설득하며 은근하게 추파를 던집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봄부터 피기 시작한 백수련은 배롱나무와 상사화에게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체화정의 사랑은 봄부터 가을까지 몽땅 내 차지라고 순수하고 청순한 마음으로 한자리에서 오매불망 기다립니다.이를 지켜보던 왕두꺼비가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일갈하는 듯, 아직 새벽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수풀 속으로 유유자적 몸을 숨기는, 세상이 온통 폭염으로 지쳐있지만, 한여름 체화정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폭염..

여름 이야기 2023.08.07

폭염으로 시작하는 팔월 첫번째 일요일 아침, 병산서원 광영지의 행복한 개구리

멈출 줄 모르는 폭염이 팔월의 첫 일요일 아침에도 일찍부터 기승을 부리네요.병산서원의 광영지(光影池)에 사는 행복한 개구리들이 광영지에 배롱나무 꽃잎을 입욕제로 띄워놓고 피부관리에 열중입니다.아침 일곱 시가 되기도 전부터 숨이 콱콱 막힙니다.광영지에서 배롱나무 꽃잎 사이를 헤엄치면서 폭염에 대비하는 개구리가 마냥 부러운 아침입니다.

여름 이야기 2023.08.06

안동 체화정의 여름 풍경

2023. 07. 11.초복 아침 안동에서는 유일하게 연꽃을 체화정 연못에서 처음 봅니다. 홍련과 백수련이 조화를 이루는 체화정 앞, 신선이 살고 있음 직한 삼신산을 아우르는 네모진 연못에 마치 심청이의 모친이 홍련 위에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에 취해 목백일홍이 하나 둘 얼굴을 붉히고 원추리가 체화정을 올려다보고, 연못가의 해당화는 거의 낙화되고 열매가 익어가는 여름을 연출합니다.몇 송이 되지 않는 홍련이 더욱더 귀히 보이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연꽃을 안동에서 처음 봤다는 감동이 크기에 개체수와 상관없이 오길 잘했다는 선택의 기쁨이 가슴 깊이 오래도록 각인되리라 싶습니다.물론,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백수련의 당당하고도 수려한 자태가 여름 체화정을 배롱나무 꽃이 아직 없이도 체화정스럽게 꾸며..

여름 이야기 2023.07.25

백련이 피기 시작한 두물머리에서 유월 마지막 주말 아침을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화창한 초여름 아침을 두물머리에서 맞으러 부지런을 떨며 태허정로를 내 달리다 팔당댐에 거의 다 달아서 두물머리를 붉게 물들이는 해돋이를 보고 새삼 아침이 너무 일찍 시작됨에 깜짝 놀랍니다.두물머리 나루터를 슬쩍 지나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의정원을 먼저 들렀지만, 어느새 꽃양귀비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잡풀들만 무성해 황량하기까지 한 물의정원을 초입에서 뒤돌아 나와 두물머리 나루터 쪽으로 방향을 돌립니다.다행히도 두물머리 연꽃단지에는 백련이 언제부터 피기 시작했는지 기대 이상으로 만개한 백련들이 반겨 줍니다.바다 같은 두물머리에 아침해가 서서히 떠 오르고,백련단지에 아침햇살이 쏟아지면서 백련이 덩달아 꽃잎을 열어 백열등에 불이 들어오듯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능소화가 연꽃단지 가운데 서서 내려다..

여름 이야기 2023.06.24

안동문화관광단지 백일홍

2022. 07. 26.여름의 안동은 도심과 농촌지역을 막론하고 배롱나무(목백일홍)들이 여름의 정점을 향해 직진 중이다. 더불어 안동댐 정상 직전에 조성된 문화관광단지의 백일홍 꽃밭에서 형형색색의 꽃님들이 길손의 발을 부여잡고 놓아주질 않고, 보슬보슬 내리는 이슬비와 가랑비에 온몸을 맡겨버린 길손은, 하릴없이 안동호 너머로 떨어지는 아쉬운 저녁해를 백일홍과 함께 담으려 연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탈 속세한다.

여름 이야기 2022.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