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37

제주도의 폭설이 트라우마가 된 지난 기억을 소환한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데자뷔)같은 현상을 온몸으로 느낀 주말을 보낸 나의 단상

처음 겪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겪었었던 일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기시감 혹은 흔히 데쟈뷰 현상이라고 하는데, 지난 주말 제주 공항이 폭설과 강풍으로 거의 전 노선이 결항 되어 관광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숙소를 구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뉴스가 시간마다 들려오면서,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6년 11개월 전 쯤, 그러니까 2016년 1월 23일이 소환되어,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않은 추억이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이른 아침부터 강풍이 불고 폭설이 내리는 고내포구를 출발해서 광령1리 사무소 까지 가는 (역)올레길 16코스에는 평소와 달리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강풍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해안길을 지나 아이젠도 없이 산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어찌..

나의 이야기 2022.12.19

일장춘몽(一場春夢) 후에 일실일득(一失一得) 하고

인간세상의 덧없음을 빗대어 흔적도 없는 봄밤의 꿈을 일장춘몽이라 하지만, 좋은 꿈을 꾸는 그 순간 만큼은 행복하기 그지 없다. 너무 좋은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꿈을 꾸고 있음을 자각하면서도, 그 꿈이 깨지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부지불식간에 갖게되지만,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비몽사몽하는 상황에서 온전히 깨어나면 아쉽고 안타깝고 공허한 느낌이 들기도한다. 지난 한주가 내게는 너무 달콤한 봄밤의 한바탕 꿈과 같았다. 지나고 나니, 알맞게 꿈에서 깨어나, 덧없고 허무하기만 했던 일장춘몽은 아니였지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 한주 동안에 잃어버린 물욕 보다는 따스한 정을 나누며, 한바탕 꿈을 같이 꾸었던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이 아직 곁에 있음은, 허무할수 있는 일장춘몽 중에 손에 쥐고 있던 보물..

나의 이야기 2022.12.17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비행기가 지연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 놓칠까 조바심이 나서 연신 9호선 지하철 안에서 버스 도착시간을 초단위로 조회하면서 버스도착시간 5분여를 남겨놓고 지하철에서 급히 내렸다.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오른손엔 캐리어를 끌고, 왼손에는 교통카드와 휴대폰을 들고 뛰다시피 버스정류장을 항해 걸음을 재촉했다. 신논현역 1번 출구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1550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있었고, 줄섰던 승객들이 거의 다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진인사 대천명'을 떠올리며 약 30m 거리를 단숨에 뛰어 버스에 간신히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손에 있어야할 휴대폰이 없었다. 주머니 여기저기를 다 뒤져봐도, 혹시나 해서 버스 바닥을 둘러봐도 휴대폰은 온데 간데 없었다. '진인사 대천명' 까지는 좋았는..

나의 이야기 2022.06.10

還甲을 맞은 새벽 나의 斷想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합쳐서 60갑자(甲子)가 되므로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뜻하는 61세가 되는 생일을 환갑 혹은 회갑이라고 불린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도 그리 불렸고, 그 중간에 바뀐적이 없으니, 음력 11월 19일인 오늘을 나의 환갑날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날이 지금 닥치고나니 모든게 어색하고, 생각했던것 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듯 싶어 내심 당황스럽다. 내 아버지 환갑잔치상을 마련했을 때와 내 어머니 환갑잔치를 치루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세상에서 환갑을 맞았다. 이제는 어차피 아버지 어머니 때와 같은 잔치 풍속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으니, 특별나게 잔치는 없었겠지만, 코로나19가 4명 이상 모이는걸 허락하지 않으니, 핑계김에 차라리 잘됐지 싶기 조..

나의 이야기 2021.12.22

스물네번째

기일을 맞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그립기만 합니다 편히 한번 모실 기회도 안주시고 황망하게 떠나신지도 어느새 스무해하고도 네번째 해가 되었습니다 어려웠지만 옹기종기 모여서 정을 나누던 시간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2주전 낳고 길러주셨던 고향이라는 곳을 갔었습니다 괜히 갔나 후회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으니 담담하리라 생각했는데 살아생전 단 한번만이라도 고향에 모시고 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젊었을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을줄 알았습니다 다음 생에는 꼭 저의 자식으로 태어나 주세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애지중지 귀하게 당신께서 그렇게 낳고 키워주셨듯이 그 보다 백배 천배 더 귀하게 애지중지하면서 오래오래 곁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꼭! 다음 생에는 저의 자식으로 태어나 주세요

나의 이야기 2021.07.17

유구천의 핑크뮬리와 시월을 보내다

태어나서 팔년 살고 일찍 떠나온 고향 유구에 핑크뮬리가 나를 부른다 유구천도 크게 변한게 없고 내가 태나고 살던 동네 골목길도 그대로고 집들도 그대로 50년의 세월을 뛰어 넘는다 불과 두시간이면 닿는곳인데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발길하기가 쉽지않다. 이제는 매년 일삼아 가게될것만 같다. 초여름의 수국정원과 시월의 핑크뮬리가 먼 옛날의 그곳으로 나를 부르리라. 내게는 내 인생의 주춧돌과 같은 고향 유구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더 또렷해지는 내 고향 유구 노년을 앞두고 오라는 이 없고 기다리는 이 없어도 마음이 스산할때 마다 살짝 다녀갈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내고향 유구 갑자기 유구가 그리워진다.

나의 이야기 2020.11.01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후 세시에 집에 돌아와 실로 오랜만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여유로움을 느껴본다. 갑자기 밥을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언제 부턴가 햇반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씽크대 아래 깊숙히 넣어 두었던 압력밥솥을 꺼냈다. 곳곳의 쇠 장식에는 부식된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금년들어 처음 밥을 짓는가 보다. 다시는 밥짓는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세상에 영원한건 아무것도 없는것 같다. 작년 가을 고창의 학원농장에서 사다놓은 1Kg이라고 씌어있는 보리쌀 봉지를 찾아 한움큼 솥에 담고, 작년 이맘때쯤 사다놓았던 햅쌀 담은 쌀병을 씽크대 아래서 꺼내어 적당히 솥에 붓고 보리쌀과 함께 대여섯번 물을 부었다 따랐다를 반복하고 나니, 바구미 같은 작은 벌레들이 씻겨나갔다. 다시는 찾지 않을것 같았던 보리..

나의 이야기 2020.07.25

유월의 끄트머리를 잡고

칠월이 문밖에 와있다 안 왔으면 싶은 칠월이 문밖에서 버티고 서있다 가슴아픈 칠월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내 어머니가 떠나가신 칠월이 아프다 내 아버지가 떠나가신 칠월이 아리다 내 형마저 빼앗아 간 칠월이 몸서리치게 밉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월이 문밖에 와있다 어서 팔월이 왔으면 좋겠다 칠월을 훌쩍 뛰어 넘어 팔월이 바로 왔으면 좋겠다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칠월이 문밖에 와있다

나의 이야기 20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