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유채꽃이 피어 봄인가 싶었던, 우도의 겨울을 대하는 설날 자정 나의 단상(斷想)

Chipmunk1 2023. 1. 22. 00:00

2023. 01. 08.

청정 우도도 피해 가지 못한 미세먼지의 공습에도 아랑곳 않고, 성산항에서 부터 함께 온 갈매기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출 즈음 성산항에서 겨울바다를 건너 우도의 천진항이 아닌 하우목동항에 발을 딛었습니다.

여짓 껏은 성산항에서 천진항으로 입도했다가, 우도봉을 지나 하우목동항을 통해 성산항으로 출도 하곤 했었는데, 천진항의 공사로 인하여 당분간은 하우목동항으로 입도해서 하우목동에서 출도 해야 하기 때문인지 하우목동항이 많이 북적이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전날의 풍랑으로 인하여 배가 결항되는 바람에 여객선이 예정보다 이른 시간부터 운행을 시작해서 정원이 차면 지체 없이 운항하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어 하우목동항이 더 북적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가파도의 일곱 배, 마라도의 스무 배가 넘는 제주도에서는 가장 큰 섬이지만, 평평한 평지로 이루어진 가파도와 마라도에 비해 해발 132m가 조금 넘는 중앙의 우도봉과 정수장 시설등을 제외한다면, 가용가능한 면적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느낌상 중앙에 비양봉이 있는 한림항 앞의 비양도를 열두 배 뻥튀기해 놓은 듯한 듬직한 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껏해야 자전거 정도 빌려 타는 가파도와 비양도, 그리고 그 마저도 없는 마라도와는 달리, 우도는 친환경 5인승 전기차를 필두로 다양한 이동수단을 보유하고 있어 노약자나 장애자도 우도봉 산책을 제외하고는 해안도로와 우도봉 주변을 맘껏 다닐 수 있음은 물론이고, 마라도나 가파도와는 달리, 섬에 머물 수 있는 시간적인 제약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유로운 섬안의 섬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우도는 서쪽의 한림읍에 있는 비양도와 동명이고, 우도에서 120m 떨어져 있는,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건너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쁜 등대가 있는 작은 섬 비양도를 품고 있으니, 제주도에서 우도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 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가을인지 봄인지 분간이 안 가는 우도의 풍경은 겨울이 아직이거나 지나갔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겠나 싶은 나그네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봄의 전령사라 할 수 있는 유채꽃이 우도의 봄을 확신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보리가 싹을 틔기 시작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돌담 안의 밭이 영락없는 봄의 모습입니다.

우도를 셀 수 없이 많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도봉 등산로를 벗어나 가본 적이 거의 없었고, 우연찮게 오른쪽 끄트머리에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가보니, 소의 여물통을 뜻하는 톨칸이가 길게 누워 있었습니다. 만일, 우도에 일주도로가 만들어진다면, 톨칸이 앞을 지나는 해상도로가 놓여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지금은 사람 얼굴모형을 하고 있는 톨칸이 끄트머리에서 낚시 삼매경에 빠져있는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고 있을 뿐입니다.

짙은 미세먼지가 우도에서 잘 보이는 성산일출봉이 햇볕 아래 희미하게 겨우 형상만 보여 아쉽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은빛 물결을 만드는 햇살이 있고, 잔잔한 파도를 가르고 날아가듯 시원하게 바다 위를 스쳐 지나는 역동적인 보트가 있으니, 우도의 겨울바다는 하늘과 이어져 우도의 풍미를 한껏 보여줍니다.

끝내 설산 한라는 미세먼지의 방해로 볼 수가 없었지만, 여전히 에메랄드빛 청정바다를 자랑하는 우도의 겨울바다가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됩니다.

성산항에서부터 무리를 지어 함께 왔던 갈매기는 온 데 간데없고, 불량스러워 보이는 가마우지 무리들이 우도 바다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갈매기도 하나 없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하우목동항을 출발해서 다섯 시간 정도 머물렀던 우도를 뒤로하고 성산항으로 떠납니다.

성산항이 가까워질 무렵,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매기 한 무리가 겨울바다를 훨훨 날아 반갑게 맞아줍니다.

이렇게 우도를 마지막으로 2023년도 새해 마수걸이 여행이 마무리됩니다.

공항 가는 길에 한라수목원 테마파크에 잠시 들러, 수고한 발을 위한 본초족욕까지 만족스럽게 마치고, 무탈하게 밤을 날아 미세먼지가 극에 달한 추운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산(Plan)을 실제(Actual)와 일치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혹자는 예산은 틀리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삶은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길로 나가는 방향키를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실천의 장을 뚜벅뚜벅 쉼 없이 걷는 장거리 여행입니다.

처음 가려던 길이 옳은 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뒤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걷는다
2. 처음 가려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
3.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이 아까워서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옳은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잘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끝까지 걷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기에, 언제나 신중하게 최선을 다하는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문해 봅니다.

새해 마수걸이 여행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예측했었던 미래에 대한 오류도 발견하고, 발견된 오류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과 실천방안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세워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늘허리에 묶어 바느질을 할 수 없듯이, 올레길도 정도에 어긋나지 않게 걸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었고, 길을 걷다 길을 잘못 들게 된다면,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걷는다는 자세로 삶이라는 장거리 여행길을 완주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꿈꾸며 또 다른 의미의 새해를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