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14.
작년 가을에 큰지그리오름으로 가는 곶자왈과 편백나무숲 가기 직전, 그리고 큰지그리오름에서 내려오는 길(큰지그리오름의 정상 까지는 교래자연휴양림 입구에서 3.4km 거리의 완만한 경사가 포함된 곶자왈과 정상부근 편백나무숲이 있는데, 편백나무숲길의 왼쪽 완만하지만 긴 경사로를 따라 오르는 한 명이 걷기 알맞은 오솔길이 있고, 큰지그리오름 정상에서 편백나무숲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짧은 일방통행 숲길이 있음)에 올망졸망 피어있던 다양한 보랏빛 야생화에 대한 강렬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여름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과연 어떤 빛깔 야생화가 반겨주려나 하는 두 근 반 세 근 반하는 설렘 가득한 부풀 대로 부푼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매표소를 지나 곶자왈로 향합니다.
곶자왈이 끝나는 길목 중간중간에 방목하는 말들이 몸통을 꺾어서 숲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지그재그식으로 만들어놓은 듯싶은 좁은 관문을 두 개 거친 후에 다다른 편백나무 숲에 이르기까지 간혹 초록빛 천남성 꽃대가 삐죽거리고 있을 뿐, 큰지그리오름 정상에 오를 때까지, 지난가을에 그리 많았던 야생화가, 눈에 불을 켜고 지나왔건만 야속하게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윗세오름과 사려니숲길과 1100고지 탐방로에 만발한 산딸나무 꽃과 때죽나무꽃도 이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아 설렘은 싸늘해지고 서운함만 가득해졌습니다.
큰지그리오름 정상에서 사방에 솟아있는 올망졸망한 오름들과 구름을 잠시 무심코 바라보다가, 혹시 편백나무 숲으로 내려가는 길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야생화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다시금 눈에 레이저급 불을 켜고 올라오던 길의 반대 방향 급경사길을 통해 편백나무 숲으로 내려왔건만, 가끔 옅은 제비꽃이 눈에 띌 뿐, 기대했던 야생화는 만나보지도 못한 채로, 터덜터덜 교래자연휴양림의 곶자왈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씁쓸했던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여름의 끝자락에서 추억으로 남겨봅니다.
배낭을 걸어놓고 잠시 쉬었다 가라는 산신의 배려인지, 등산로 가운데 옷걸이처럼 서있는 주목 나뭇가지에 배낭을 벗어 걸어놓고 주변 숲 속까지 샅샅이 뒤져 보건만, 아직 익지 않은 초록순 천남성만 눈에 띕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조금 붉은 기운이 물들어 있겠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합니다.
큰지그리오름 야생화에 대한 나그네의 무지와 근자감이 불러온 참사로 서너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 후회도 잠시 했지만, 모든 것이 정보와 준비가 소홀했던 나그네의 불찰이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그나마 서운함이 조금 진정되는 듯싶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턴가 나의 불찰로 야기된 예상치 못한 실수와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려 하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풍조가 정석처럼 남발되는 작태를 분노하며 지켜봐 온 나그네는, 모름지기 매사 신중하게 결정하고 조금 늦더라도 꼼꼼하게 과정을 되짚어가고, 간혹 기대치와 어긋나는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탓할 대상을 찾는데 혈안이 되기보다는,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지체 없이 사과하고 책임지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독백하듯 읊조리며, 작년 가을의 좋았던 기억을 다시 추억하고, 돌아오는 가을에는 작년에 큰지그리오름에서 만났던 야생화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울러 오늘 예보된 폭우가 가을을 부르는 착한 비가 되어 새벽에 잠시 내리다 그치는, 깨끗하고 상쾌한 아침이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https://tglife1.tistory.com/m/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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