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강정해오름노을길의 추억

Chipmunk1 2023. 8. 19. 05:58

2023. 06. 15.

우연히 사진첩을 뒤적이다 두 달 전 쫓기듯 제주를 탈출하다시피 김포공항도 아닌 청주공항을 통해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숨 가빴던 초여름 강정포구의 '강정해오름노을길'에서 운 좋게 해돋이를 만났던 하지(夏至)를 엿새 남긴 흰새벽의 기억들이 조각 맞춤을 합니다.

코로나 펜더믹이 끝나고, 가성비 좋은 동남아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현저히 줄어든 제주와 김포를 오가는 항공편 때문에 일정에 맞는 항공편을 이용하기가 쉽지가 않은 터라 어쩔 수 없이 수국과 산철쭉을 볼 예정으로 제주행 항공권을 겨우 예매하고, 돌아오는 제주발 김포행 항공권은 제주에서 수시로 확인해서 복잡한 주말을 피해 목요일(6월 15일) 늦은 오후 내지는 밤 시간 항공편을 이용할 요량으로 무작정 3박 4일 일정으로 여행을 감행했습니다.

물론, 일찍 예매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산철쭉을 보기 위해 한라산 윗세오름을 올라야 했기에 가급적 비를 피해 일정을 잡다 보니, 5월 말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린 비로 인해 서너 차례 항공편과 호텔과 렌터카등의 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며 5월 말부터 잡기 시작한 일정을 산철쭉 때문에 더 이상은 미루지 못하고, 제주행 항공권과 호텔과 렌터카만 예약한 채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었네요.  그것도 월요일 저녁에......

가능한 서둘러 윗세오름을 오르고, 우도에 들어가 수국을 보고, 남원해안도로 옆의 수국과 서귀포 토평동 중산간도로 옆의 수국과 사려니숲길의 산수국과 제주시 남국사의 수국과 산수국, 그리고 1100 고지 탐방로의 산딸나무 꽃과 야생 노루를 만나고, 서귀포항 새연교의 여름밤 음악분수쑈까지 소화시키고, 언제 떠나도 아쉽지 않을 제주의 마지막 밤을 맞을 때 까지도 김포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하고 애를 태우다 밤 열 시가 되어 김포행 항공권이 완전 매진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하다가 궁여지책으로 청주공항행 목요일 오전 9시 20분발 항공권을 겨우 예매하고 모든 일정을 11시간 앞당겨 놓은 채로 쪽 잠을 청하고 새벽 네시쯤에 호텔을 나와 아쉬운 마음에, 지난 이틀 내내 흐린 날씨 탓에 해돋이나 해넘이를 볼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길에 경유하기 편한 추억이 많은 강정포구로 향했습니다.

하지를 엿새 앞두었기에 다섯 시 이십 분쯤부터는 해돋이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강정해오름노을길을 아직 여명도 없는 새벽 네시 반쯤부터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와 일찍 출항하는 고깃배의 통통거리는 소리를 벗 삼아 어둠이 서서히 걷치고 멀리서 아련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한라산 백록담벽을 보면서 어쩌면 제주를 급히 탈출(?)하는 마지막 날 아침에 해돋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설렘으로 해오름노을길 끝을 향해 발걸음도 가볍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라산 쪽 동쪽 하늘에는 붉은빛만 살짝 감돌뿐, 언제 해가 나오려나 조바심 속에서 셀카봉 삼각대 위에 혹시나 여벌로 가져간  스마트폰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촬영버튼을 누른 채로 세워놓고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삼각대를 모른 채 하며 또 다른 카메라를 사진 모드로 하고 한라산을 응시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눈에 보일 듯 말 듯 다섯 시 사십 분이 다 된 시각에 해가 구름사이를 뚫고 한라산 기슭에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잠깐 사이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자 아침해가 거침없이 한라산 너머에서 쑥 올라오고 바다에 중문과 외돌개와 서귀포항 앞바다에 비친 찬연한 아침노을이 오로지 나그네에게 세상을 한꺼번에 다 가진듯한 기쁨과 행복을 선물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변덕스러운 바다 위의 해돋이는 겹겹이 몰려드는 한라산 백록담벽의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다가 그대로 구름 속으로 파묻히고 나그네의 공항 가는 길은 다시금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삼각대에서 새벽 바닷바람에 간간히 흔들리며 한라산을 바라보던 여벌로 준비해 간 스마트폰 카메라가 품은 해돋이 동영상은 조금 미흡했지만, 오랜만의 제주 해돋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유월의 제주 여행을 흡족하게 마무리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는 좋은 기억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 막바지 폭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앉고 주말 아침을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