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과 하늘, 그리고 바다와 하늘과 가을 이야기
올레길 16코스의 종점인 광령1리 마을회관 앞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숙소를 나와, 한라병원 앞 정류장 까지 한달음에 걸어갔다. 우연히 길 건너편에 있는 24시 순두부집이 보여서 혼밥 할 곳을 찾던 엊저녁 생각을 잠시 하곤, 다음에는 조금 더 외곽으로 걸어나와 맘 편히 식사를 하리라 마음 먹었다. 새로운 맛집(?)을 한군데 발견하고는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런데, 광령1리사무소로 가는 버스 290-1을 40분 동안 기다리다 탔다. 9분후 도착이라는 도착정보 안내 시스템은 아랑곳 없이, 40분후에 도착하는 엉터리 안내 시스템은, 획기적인 버스노선 조정후에도 전혀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돈은 많이 드린 것 같은데 영 아니다 싶다.
각설하고, 걷기도 전에 힘을 빼고, 출발지인 광령1리 마을회관에는 9시가 넘어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2016년 1월 23일, 겁없이 고내포구를 출발해, 눈보라가 세찬 바닷바람에 눈을 뜨고 걷기 조차 힘겨워서 주변경관 살필 틈도 없이 잔뜩 긴장하고, 미끌어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걸었던 그 길이, 오늘은 나무계단도 보였고, 거기엔 낙엽이 눈 대신, 까딱 잘못하면 미끌어질 수 있게 위협하고 있었으며, 제대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 매력적으로 이따금씩 발걸음을 붙잡았다.
같은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1월과 11월이 많이도 다르게 보인다.
폭설 속에서도 노란 감귤이 얼어버린 눈 속에 갇힌 나무에 언 채로 매달려 있었는데, 지금은 광령리를 지나 항몽유적지를 지날 때 까지 온통 노오란 귤밭 일색에 파란 하늘과 멀리 보일듯 말듯 짙은 코발트색 바다가 앙상블이 되어 조화롭게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몽유적지 위쪽에는 그 날의 혼령들이 한을 품은듯, 때 지난 키 작은 토종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었다. 곳곳의 정자에는 삼사오오 담소가 한창이다. 그날은 사람도 차도 짐승조차도 볼 수가 없었는데......
그리고, 거센 눈보라와 바닷물이 바람에 날려 온몸을 적셨던 그 바다가 오늘은 너무도 태평하게 해안의 바위에 잔 물결을 얌전하게 보내기만할 뿐, 거의 미동도 않고 해안의 갈대와 잘 어우러져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게 했다.
고내포구를 코앞에 두고, 새로 오픈한 예쁜 카페인 듯한 퓨전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으로 순한 문어짬뽕을 한 그릇 했다.
가성비가 뛰어나 다시 찾고 싶은, 내게는 모두해변에 있는 ’닐모리동동’ 같은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고내포구에 도착해서, 숙소가 있는 곽지해수욕장으로 길이 나 있는 올레길 15(B) 코스를 걷다가 해넘이에 넋을 빼앗긴 채로 곽지해수욕장에서 오늘 함께했던 따끈했던 해를 수평선 너머로 넘겨버리고, 지친몸을 이끌고 곽지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럭셔리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제주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제주올레걷기축제 첫날 올레길3코스를 가다 (0) | 2017.11.03 |
---|---|
올레길 15(B) 곽지해수욕장 부터 14코스 까지 역올레하다 (0) | 2017.11.03 |
시월의 마지막날, 제주에서 무전취식(無錢取食)을 하다. (0) | 2017.10.31 |
잊지못(말아야)할 추자도 굴비축제를 마치다 (0) | 2017.10.04 |
추자도 참굴비축제 첫날 (0) | 2017.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