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15(B)코스, 그리고 낭만이 있는 14코스의 역올레
어제 저녁 일몰과 함께 곽지해수욕장에서 15(B)를 중단하고 푹 쉬었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끝내고 지체없이 곽지해수욕장에서 부터 다시 시작했다.
복덕개 포구를 지날 때 까지는 계속되는 해변길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무데크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돌로 길을 만든 복덕개 포구는 시작 부터 정감이 느껴졌고, 어촌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민속신앙이 곳곳에 선보이는 영등대왕, 영등할매, 영등하르방, 그리고 영등할매의 딸까지..... 겸손한 어부들의 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얼마전 보았던 티베트 영화에서 처럼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신을 잘 모시지 못한 나의 불찰이 만들어낸 태풍과 풍랑으로 인하여 어획량도 결정되고, 어부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어촌의 풍경이, 잊고 지나온 마음의 고향 같아 흐믓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직은 속이 덜찬 양배추가 어마무시한 규모로 마치 연꽃잎 처럼 한림해변 코앞까지 뒤덮고 있었다. 이따금씩 졸파가 채소전의 구색마추기로 갖춰 놓은 듯 심궈져 있었다. 그리고, 사람하나 겨우 빠져 다닐 정도의 아담한 동네 돌담길 아래 채송화 같은 작고 앙증 맞은 예쁜 꽃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정겨웠다.
이렇듯 비양도가 코앞에 보이는 한림항 여객선 터미널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해서 아쉬운 15(B)코스의 역올레를 마치고, 14코스의 역올레를 준비했다.
한림항에서 부터 쉬지않고 따라온 비양도는 협재해수욕장에 들어서면서, 주변 투명한 비취를 갈아 놓은 듯한 바다색과 어우러져 비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협제해수욕장을 뒤로 하면서, 해변의 야자수가 마치 열병식을 하듯 곧게 뻗어 나를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작년 3월초 협재해변은 강풍에 꺽어질듯 야자수가 반쯤 누웠었고, 걷기 조차 힘들었음은 물론이고, 숨 쉬기 조차 버거웠던 기억이 아스라이 교차되어 스치면서, 지금 지나온 협재해변의 가을은 그 때 보지 못했던 협재의 또다른 이웃 비양도와 함께 협재의 매력을 맘껏 발산하고 있었다.
거기에 협재해수욕장과 금능으뜸해변을 잇는 야자수 숲이 한데 뒤섞여 바다와 야자수와 비양도가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과 더불어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정도라면, 가을에 다시찾은 협재의 선물은 더할 나위없이 마음에 꼭 들었다.
이에 뒤질세라 월령포구의 풍력발전소 단지의 풍차가 선인장 자생지를 둘러싸고 웅웅 거리는 굉음을 흘리며, 묵묵히 거대한 날개짓를 시원스럽게 가을 하늘과 가을 바다를 향해 이어가고 있었다.
월령포구를 벗어나도 여전히 선인장이 자주빛 백년초를 잉태한 채로 월령포구를 에워싸고 있었다.
저지마을을 향해가는 길목에도 곳곳에 선인장이 인상깊게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지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독 빨라진건 3시 30분경 저지마을을 약 6키로 정도 남기고 70은 훨씬 넘으신 듯한 14코스를 걸어 내려 오시던 여성 올레꾼 어르신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부터였다. 시간상 아직 여유가 있단 생각에 간새가 샘낼 정도로 즐비한 억새풀을 배경으로 셀카놀이에 여념이 없던 내게 그 어르신이 한 말씀 던지셨다.
"해가 짧으니 서둘러서 가세요"
자고로 어른 말씀 들어서 손해볼일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어둠속을 헤매면서 공포를 느꼈던, 몇번의 다시 하고싶지 않은 경험이 있던 터라, 셀카 놀이를 중단하고, 간간히 올레 리본만 찍으면서 속보를 했다.
서둘러 걷다가도, 한라산이 흐릿하게나마 시야에 들어오니, 한라산은 줌을 당겨서 가능한 크게 정성드려 몇장 찍고 5시 20분 경에 드디어 저지마을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넘어갔지만, 사방은 아직은 사물을 구별하기에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해를 넘긴 산촌 저지마을은 순식간에 어둑어둑해졌고, 갑자기 급해진 마음에 연신 온평포구에 데려다 줄 버스를 검색하면서 발을 동동 거려야했다.
다행스럽게도 10분정도 지나 784-1번 간선 버스를 타고 20여분, 동광환승정류장에서 282번 지선 버스를 타고 50여분, 서귀포 중앙로터리에 도착해서, 또다시 101번 급행버스로 갈아 타서 45분, 성산 바로전 신선환승정류장에서 온평리에 가는 201번 버스를 타고 네정거장 가서 내려,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1.2km의 길을 걷다 서다를 반복하다, 심봉사가 길을 찾듯 겨우 도착한 온평포구옆 바랑쉬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고보니, 어느새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주변의 모든 식당은 내게 저녁을 주지 않았다. 어느 시골이나 손님이 끊어지면, 언제나 시간에 상관없이 영업을 마감한다.
오늘하루 37.5km, 오만보를 넘게 걸었는데, 사발면과 게스트하우스에서 먹다 남긴 찬밥 한덩어리로 감사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기나긴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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