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9(월)
★ 연무대에서 시작하여 연무대에서 마무리하는 코스.
적당히 흐릿한 날씨에 기온도 걷기에는 무리가 없는 6월의 중순 마지막날.......순창 복흥에서 공수한 미생물로 재배한 친환경중의 친환경 헬스푸드인 오미자와 복분자를 중탕한 원액즙을 냉쥬스(만드는 비법(?)은 나의 개인블로그에 상세히 공개함.ㅋㅋ)로 만들어 백팩 양포켓에 담고 보무도 당당하게 창용문 연무대를 가로질러 성곽길에 들어섰다.
연무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연무초등학교를 왼편으로 쳐다보며 팔달산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원화성에 있는 다섯개의 비밀문중의 하나인 동암문을 건너 삼일상•공고를 왼쪽으로 바라보며 화홍문 가는 길목에 있는 동북포루를 지나,
또다른 비밀문중의 하나인 북암문을 거쳐,
멋드러진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이 나름 운치가 있어 그대로 누각에 기대어 앉아 휴식을 취했다.
방화수류정을 나와 얼마안가 북동포루를 지나, 하천이 지나는 듬직한 화홍문을 지났다.
그리고, 장안문이 먼 발치에서 나타났고, 북동치와 북동적대가 장안문의 오른쪽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장안문을 바로 지나 대포의 포신을 북서방향으로 포진하고 있는 북서적대를 지나 멀리서 팔달산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왼쪽 아래에는 행궁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뒤이어 북서포루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리고, 북포루가 문이 굳게 닫힌 채로 멀뚱히 서 있었다.
북서포루를 지나 화서문에 닿기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적의 동태를 살핌과 동시에 공격을 할 수 있는 군사시설인 공심돈이, 높다란 3층 건물의 독창적인 건축 기술로 축조되어 오늘날에도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었다.
화서문 누각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네덜란드에서 혼자 와서 한국만을 두달째 여행중인 올 9월에 대학에 입학예정인 여학생과 2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었다.ㅋㅋ
작년 6월에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안가고, 7개월간 편의점에서 일을 해서 여행경비를 모아 여행을 왔다하니, 수백만원 들여 유럽여행 보냈던 우리 아들들이 생각났다.
더우기 지난 4월 한국에 와서 인터넷으로 대학을 지원해서 수학과에 합격했단 얘기에 놀났고, 네덜란드 인구가 17백만이나 된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대부분 12개 이상의 국공립 대학등록금이 우리돈으로 연간 120만원 정도라는데 한번 더 놀랐고(사립대도 연간 200만원 정도), 그 역시 95%이상의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매달 10만원 정도씩 본인들 통장으로 지원받아 등록금을 스스로 납부하고, 졸업후 15년간 무이자로 분할상환하면 된다 한다. 거기에 생활비 까지 월 800유로씩 무이자로 대출이 된다하니, 부모 도움없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아이가 서울서 시작해서 춘천 속초 설악산 강릉 대구 포항 부산 제주도 한라산 여수 목포 광주 대전을 거쳐 수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는데, 한라산과 설악산 뿐만 아니라 대부분 대도시가 너무 깨끗하고, 유럽사람들과 달리 한국사람들은 산에 프라스틱 용기나 폐비닐등을 무단으로 안 버리고 다 갖고 내려와 폐기장소에 버리는것이 너무나 좋게 각인되었다고 놀라워 한다.
또한, 유럽의 대도시나 지하철에서는 가방을 내 앞으로 꼭 끌어 않지 않는 한, 더 이상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맘이 편한 것에 비해, 한국은 자기것이 아니면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것 같아서 너무 안전하고 좋다고 너스레를 떤다.ㅋ
유럽에서는 식당에서도 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잠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라진다나 뭐라나.ㅋ
한국이 그리 좋으면 이민와서 살라 했더니, 남친을 버리고 올 수는 없다고 한다. 그 말 끝에 두달간 혼자 해외여행 올때 남친이 허락(allow)했냐고 물으니, 무슨 소리냐고 반문한다. 자신에게 허락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란다.ㅎ 참 당돌하지만 틀린얘기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화서문에서 두시간 정도 네덜란드에서 온 츄리라는 아이와 수다를 마치고, 서북각루에 다시 올라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휴식에 들어 갔다.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ㅋ
팔달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서일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약간 숨이 가빠지면서 서포루가 단단한 모습으로 맞는다.
팔달산의 가장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전에는 서이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북유럽의 에스토냐에서 휴가온 행복한 부부와 기온에 대하여 몇마디 대화를 나눴다. 에스토냐는 한겨울인 1,2월엔 기온이 영하 25~30도 까지 내려간단다. 사진을 함께 찍고 메일로 사진을 보내 달라고 명함을 한장 건내준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래로 외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 수원화성은 오늘도 내국인 보다는 외국인들이 훨씬 많이 찾는 세계속의 수원화성으로 거듭나는듯 싶다.
마침내 팔달산 정상에 올라 서노대와 서장대가 보무도 당당하게 우뚝 솟아서 건너편 끝에 있는 창룡문에서도 또렷하게 그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다섯개의 비빌문중 세번째 서암문이 팔달산 꼭대기에 숨어 있었다.
팔달산 끝자락에 가까이 오니 서삼치가 외롭게 서 있다.
팔달산 맨 끄트머리에 네번째 비밀문인 서남암문이 서남포사를 품고 있었다.
팔달문으로 내려오는 비탈에는 남포루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수원 구심중 가장 번잡한 팔달문과 전통의 지동시장이 성곽길의 맥을 끊고 있음에 자못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지동시장 옆에서 다시 시작된 성곽길이 이어지면서 동남각루와 동삼치가 성곽길의 재진입을 환영해 주었다.
동이포루는 쉼터가 있는 마지막 누각이지만, 꾹 참고 그냥 지나쳤다.
봉돈이라 명명된 봉수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동이치와 동포루를 가볍게 통과하고,
창룡문을 가기전 마지막 치와 포루인 동일치와 동일포루가 나타났다.
창룡문의 위용은 가히 팔달문에 뒤지지 않을 만한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동북노대를 지나고,
또하나의 공심돈이 창룡문과 연무대 사이에 높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전에 출발했던 연무대는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하였다 하며, 동장대라고도 불렸다 한다.
이로써, 3시간에 가까운 수원화성둘레길 트레킹을 마무리 한다.
정조임금이 생부인 사도세자(장조)를 사후에라도 가까이 모시고자 이곳에 행궁을 세우고, 도읍마저 이곳으로 천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천도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고, 나이어린 순조가 왕위를 계승하니, 조선의 명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만일, 정조가 더도 덜도 말고 딱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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