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20(화)
날씨가 꾸물꾸물해서 망설이다 보니, 몸도 찌뿌둥해오고 마음도 쳐지고,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 있다가 오후도 한참 지난 시간에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융건릉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것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음을 알리는 대리석 표지석과 시원하게 뻗은 금강송이었다.
우선 능을 먼저 방문하기로 하고, 오른쪽의 영릉으로 발길을 옮겼다.
융릉(隆陵)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조(莊祖 1735~1762) 와 혜경궁으로 알려진 헌경황후 홍씨(獻敬皇后 洪氏 1735~1815)의 합작릉이다.
소론계 학자에게 학문을 배운 사도세자는 노론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1762년(영조38년)에 뒤주에 갇혀 죽게 되었다. 아들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승하고, 당시 양주에 있던 영우원(永祐園)을 이곳으로 옮겨와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1899년 고종이 장헌세자를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혜경궁을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추존하고, 현륭원을 융륭으로 높였다.
그리고, 서쪽에 있는 건릉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릉(健陵)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와 효의황후 김씨(孝懿皇后 金氏 1753~1821)의 합장릉이다. 1899년 고종이 정조를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로, 효의황후를 효의선황후(孝懿宣皇后)로 추존했다. 원래 정조의 능은 융륭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황후가 승하하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곳에 합장하였다.
인적도 뜸하고 일행도 없으니, 사색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함께했다. 그러나, 오랜 가뭄으로 능 진입로가 사막화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건지 건릉을 나오는 길에 경운기에 물통을 싣고 물을 뿌리는 웃픈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건릉을 나와 왼쪽으로 건릉을 한바퀴 크게 도는 산책로로 발길을 옮겼다. 진한 금강송 향기 대신 흙먼지 냄새가 온 산을 뒤덮은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거질대로 우거진 금강송 이파리가 마치 공기청정기의 필터가 되어 미세먼지를 걸러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하는 얼토당토 않은 상상을 하며 산책로를 내려왔다.
불과 250년전 영조는 세자를 쌀뒤주에 가두어 죽게하는 천추의 한을 남겼고, 정조는 그 아비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정성지극으로 효를 다했다.
아들을 죽게할 수 밖에 없었던 영조의 고뇌도 아버지의 한을 풀어 주려고, 가까이서 모시고자 도읍지 까지 옮기려했던 정조의 아비에 대한 그리움도 알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되어 200여년이 지난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그대로 투영되어 오늘도 변함없이 서로의 헤게모니를 뺏고 빼앗으려는 잔인하고 끝이 없는 쌈박질을 다하면서도 입만 떼면 국민과 국가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다.
이 또한 앞으로 적어도 250년 이상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잘못된 정치의 희생물이 되어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나가버린,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큰정치를 제대로 실현해 보지도 못한채 져버린, 사도세자를 포함한 아까운 그들이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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