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서귀포항에서 넉 달 만에 해돋이를 맞는 나그네의 단상(斷想)

Chipmunk1 2024. 3. 24. 08:27

2024. 03. 13.

작년 십일월 첫날 새벽, 어리석은 안전불감증으로 바다에 빠졌던 어처구니없는 탐욕이 불러온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는지, 직전 여행이었던 두 달 전 까지도 근처에는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새벽 발걸음이 어느덧 서귀포칠십리 공원을 지나 멀리 섶섬과 한라산 사이에서 밝아오는 여명을 따라 서귀포항으로 들어섭니다.

이제는 더 가까이 다가가서 해돋이를 맞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안전한 제방 위에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해돋이를 맞습니다.

욕심은 작은 만족에 흡족하지 못하는 과욕이 부르는 불행의 단초가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옥죄고 파멸의 길로 직진하게 만드는 탐욕을 낳는 것임을, 생각하기 조차 끔찍한 네 달 전 서귀포항 방조제 공사장에서 겪었던, 오로지 조금 더 만족스러운 해돋이 장면을 담겠다는 단순함으로, 안전 불감증이라는 어리석음과 돈키호테 같은 무모함이 뒤섞여 두 번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자연의 순리에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했던 지난 시간들을 통해 깊이 반성하고 소중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제는 과욕이 불러오는 안전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또한 작은 희망과 소박한 꿈이 분수를 벗어나 죄악시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안분지족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호연지기 하는 삶에 순간순간 만족하고, 때론 마음속에 간직해 온 나만의 작은 행복을 가끔씩 꺼내보기도 하며 한결같이 유유자적한 미소로, 소시민으로서의 작으나마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 간절함으로, 서귀포항에서의 해돋이와 함께 넉 달 전과는 전혀 다른, 다시 태어난 것 같은 행복한 마음으로 새로운 아침을 활짝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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