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01.
여명을 뚫고 안동시 도산면 선성리 14의 예술과 끼가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는 예끼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안동호에서 날아드는 물안개가 반겨줍니다.
도산면 보건지소 앞, 텅 빈 선성수상길 주차장에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혹여 물안개가 해돋이를 훼방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경사진 나무데크길을 따라 발그스름하게 물안개 위에 여명이 내려지는 멋진 광경을 바라보며 살짝 언 듯싶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다소 부담스러운 부교 위를 잰걸음으로 좀 더 가까이 여명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적당하게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호위를 받으며 동이 트기 시작하는 안동호의 중심부를 향해 동으로 동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옅은 물안개 너머로 붉은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물안개 위에 머물던 옅은 잿빛 구름조차도 붉게 물들이고 반짝이는 윤슬을 잔잔한 파문에 싣고 저 멀리 동쪽 끄트머리 산 위를 힘겹게 넘어오기 시작한 태양을 맞이하기로 작정한 물안개도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며 아침해를 기다립니다.
밋밋한 해돋이를 거부하는 듯, 두터운 구름의 환영을 받으며 점점 짙어지는 물안개의 마중을 받은 채로 태양의 붉은 기운이 안동호를 배경으로 마치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를 방불케 하는 현란한 구름이 점점 붉은빛을 띠며 해돋이의 전령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려는 듯 보입니다.
불덩이 같은 구름과 불그스레하게 햇볕을 머금은 물안개가 서로 닿을 듯 말 듯 태양의 그림자가 안동호를 폭발 직전인 화산의 분화구로 만듭니다.
이윽고, 구름 사이에서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여의주 같은 해를 물고 몸부림치듯 안동호의 초대형 스크린 위를 날아갑니다.
그리고, 짙은 구름과 물안개를 뚫고 장엄하게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여름에는 새벽 다섯 시도되기 전부터 목 빼고 기다리던 안동호 선성수상길 위에서의 감격스러운 해돋이를 2023년 12월 첫날에 드디어 마주합니다.
시시각각으로 구름과 물안개와 숨바꼭질하듯 사라졌다 나탔났다를 반복하며 다양한 색감으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호사다마, 다사다난했던 십일월의 잊지 못할 기억들을 모두 추억의 창고에 옮겨놓고, 먼 훗날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 다시 꺼내보고 그리워해도 늦지 않겠지요.
찰나의 순간에도 밝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태양처럼 이승에서의 짧은 삶의 여정도 꾸준하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이 행복과 화평의 시간들과 뒤섞여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역경이 삶의 끝이 아닌 과정이 되고, 행복한 마음의 평화 속에서 남은 삶이 갈무리되기를 십이월 첫날 장엄하게 떠오르는 해님에게 간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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