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가을의 정취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백양사의 초겨울

Chipmunk1 2023. 12. 15. 09:11

2023. 12. 02.

애기단풍을 만나러 오리라 마음먹은 지 오래 건 만 이 핑계 저 핑계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어서야 백양사를 찾습니다.

지난 9월 초, 백양꽃을 만나러 온 지 정확히 세 달 만에 찾은 백양사는 아직 가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숨 쉬고 낙엽은 바싹 말라서 작은 바람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구는 백양사 가는 길이 많이 쓸쓸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사흘 전 불교계를 쥐락펴락 하면서 사바세계를 구하기보다는 더욱더 혼돈스럽게 만들던 승려가 화마 속에서 국가 정보기관에서 수사할 정도의 커다란 의문을 남긴 채로 입적을 했고, 백양사 일주문 현판 아래에는 조문 현수막이 가뜩이나 호젓한 초겨울의 아침을 무겁게 만들고  흐릿해서 우중충한 날씨가 을씨년스럽기 조차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백양사 위의 백학봉이 일광정 앞 약수천 작은 호수에 투영되어 잠시 복잡했던 마음이 정갈해집니다.

백학봉 품에 안긴 쌍계루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초연한 모습으로 의연하게 서있고, 거의 말라버린 애기단풍이 보란 듯이 약수천에 닿을 듯 말 듯 힘겹게 만추의 끝을 붙잡고 있습니다.

백양사 경내 입구를 지키며 쌍계루를 등지고 서있던 백양의 조각상은 세 달 만에 온 데 간데 없어졌고, 청운정 앞 연못에는 여전히 비단잉어가 반갑게 맞아주고, 흐릿한 일기 속에서도 담담하게 백학봉이 백양사를 감싸 안고, 연못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비단잉어들로 인해 백학봉은 연못 속에서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연못가의 붉은 인동덩굴은 아직 붉은빛을 간직한 채로 겨울을 맞이합니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서있는 대웅전과 백학봉이 다소 우중충해 보이지만, 대웅전 뒤뜰의 팔 층 석탑 주변은 만추의 흔적이 백학봉을 아래 여기저기 남아있습니다.

팔 층 석탑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모과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몇 개 남지 않은 노랗게 농익은 모과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모습에서 언뜻언뜻 삭풍이 간간이 불어오는 겨울이 보입니다.

팔 층 석탑 뒤 언덕 위에 잎조차도 하나 없이 앙상하게 거무죽죽한 자태로 서 있는 감나무 가지에 까치감이라 불리는 잘 익은 감들이 올망졸망 붙어서 백학봉을 바라보며, 배고픈 까치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산새들에게 까지도 육신을 보시하면서 겨울을 맞습니다.

돌담아래 알록달록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소국들이 이제 막 시작된 백양사의 겨울을 기꺼운 마음으로 품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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