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04.
메밀꽃 필 무렵, 지난달 고창의 학원농장 흰메밀밭 사이에 가끔씩 붉은 빛깔을 띤 메밀꽃을 발견하곤 신기해했던 기억을 안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301번지 일대 동강변 주변에 만발한 홍메밀(붉은메밀)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젊은 시절 래프팅을 하러 다녔던 바로 그 길이었음을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언젠가 왔던 길 같은 낯설지 않음에 평행이론을 떠올리고 심지어는 도플갱어까지 소환하며 방향 감각도 잊은 채로 내비게이션만 믿고 홍메밀밭에 안착했습니다.
동강에 붉은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따가운 가을 햇살이 붉은 메밀밭을 한층 더 선명한 홍메밀 물결이 넘실대는 붉은 정열의 강으로 만들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의 언약이라도 하면서 걷고 싶은 낭만 가득한 예쁜 길이 축구장 열개 이상의 너른 동강변에 끝없이 펼쳐진 곱디고운 홍메밀꽃밭에 사랑스러운 커플들이 도란도란 속삭이며 거니는 사랑의 미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 흐릿했던 가을 하늘은 동강 위에 활짝 열리고, 한낮의 태양볕은 사정없이 홍매일꽃밭에 내려와 앉아 눈부신 붉은 강을 이루고, 살랑이는 소슬바람에 가냘픈 홍메밀꽃은 수줍게 웃으며 나그네를 시나브로 가을 속으로 유혹하는 영월 동강변의 홍메밀꽃밭은 천상의 화원인가 싶습니다.
'사랑의 약속'이라는 꽃말을 실천이라도 하려는 듯, 만개한 홍메밀 꽃송이 송이마다 앙증맞은 다섯 장의 꽃잎마다 연인들이 남겨놓은 사랑의 언약이 가득 담긴 채로 풍성한 가을을 넉넉하게 예견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노랑나비, 네발나비, 그리고 큰멋쟁이나비 까지 찾아와 홍메일꽃과 사랑을 속삭이는 영월 동강변의 홍메밀꽃밭에는 연령층이 사뭇 다른 보기 좋은 다정한 커플들이 아름다운 홍메밀꽃이 되고 노랑나비가 되고 네발나비가 되고 큰멋쟁이나비가 되어 사랑이 영글어가는 가을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나그네의 마음은 한없이 넉넉해집니다.
키다리 홍메밀꽃들의 늠름한 모습에서, 이제는 아득하게 오래된 고등학교시절 월요일 아침 교련조회시간 뙤약볕 아래 교장 선생님의 지루한 훈화가 끝나고, 학년별 열병식 분열을 시작한다는 연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전을 울리는 환청 속에서 잠시 아련한 추억여행을 합니다.
젊은 연인들의 주체할 수 없는 불타는 정염을 한데 모아놓은 듯 영월 동강변의 홍메밀꽃밭은 지금 한창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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