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22.
위로는 용천사가 올려다보이고, 아래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다목적 저수지가 모악산 초입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산허리쯤에 아담하게 조성된 공원이 지금은 울긋불긋 꽃무릇이 있어 꽃무릇공원이라 붙여진 이름이 제법 잘 어울리지만, 일 년 중 초가을 이십여 일 남짓 꽃무릇이 찾아오는 기간을 제외한다면, 일 년 열두 달 객지를 떠돌다 잠시 돌아와 이십여 일간 잠시 머물다 떠나는 님을 한평생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아낙의 마음으로, 함평의 꽃무릇공원은 대한민국 최대 꽃무릇 자생군락지라고 홍보하고 있는 영광군의 불갑산 상사화(꽃무릇) 축제 보다도 일 년 먼저 시작되었음을 굳이 떠벌리지 않아도 대한민국 꽃무릇축제의 효시가 되는 곳이 바로 꽃무릇의 이름으로 일 년을 기다려주는 꽃무릇의 성지인 함평 꽃무릇공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악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가둬둔 저수지 가에 꽃무릇이 울긋불긋 투영된 환상적인 풍경을 단지 꽃무릇공원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아쉬워 보이고, 나그네의 눈에는 천상의 정원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기에, 짧게 왔다가는 꽃무릇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객지를 떠다니다 겨우 일 년에 이십여 일 남짓 잠시 돌아와 머물다 떠나는 장돌배기 서방의 변치 않는 참사랑이 함께하기에 견딜 수 있는 아낙의 애닮은 사연이라도 안고 있는 듯싶은 꽃무릇공원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용천사를 막 내려와 저수지 가에 투영된 붉은 꽃무릇과 눈맞춤하려는 찰나, 저수지의 잔잔한 파문과 투영된 꽃무릇의 데칼코마니 사이사이에 떨어지는 해와 서쪽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해가 같은 해 일진대, 저수지에 투영된 모악산 자락을 넘어가는 해가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해가 쌍둥이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 나그네의 뇌리 속 화보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함평의 꽃무릇공원에는 평지보다 조금 이르게 초가을의 저녁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수지 둑방길 위에서 바라보이는, 북북동 쪽 방향에서 병풍처럼 용천사를 에워싼 모악산 꼭대기 위에는 아직도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파란 가을하늘이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와 해맑은 얼굴로 애틋하게 작별을 나누는 듯 어둠 속으로 빠르게 갇혀버리는 함평 모악산 기슭의 꽃무릇공원을 뒤로하고 호남고속도로를 향해 길을 재촉하며, 고창선운사에서 해돋이로 시작된 꽃무릇과의 만남이 영광 불갑산의 꽃무릇을 거쳐 함평 모악산 기슭의 꽃무릇공원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짧지만 길었던 꽃무릇 여행을 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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