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한라산 윗세오름의 봄 풍경

Chipmunk1 2023. 4. 8. 00:00

2023. 03. 22.

반신반의 어제저녁부터 갑자기 바뀐 일기예보를 보고
이리 해석하고 저리 해석하다가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여섯 시를 앞두고 영실탐방로 입구를 향해 달렸다

변화무쌍한 한라산의 기상변화에 대비하고자 우비를
배낭에 넣고, 편의점에 들러 열량 높은 음료와 간식도
배낭에 챙겨 넣고 '영실(靈室) 해발 1280 m' 표지석과 탐방로 입구를 통과해서 오매불망 윗세오름을 향했다

지난 1월 초,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받아 눈 덮인 1100로를 달려 영실탐방로 입구에 도착했으나, 오후 2시 5분, 불과 5분 차이로 영실탐방로가 폐쇄되어, 하릴없이 1100 고지 탐방로로 대신하고자 하는 맘으로 어렵게 1100 고지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폭설로 탐방로 입구는 임시로 폐쇄되어 있어, 한라산 방랑자가 된 채로 아직은 입산이 가능한 작은 한라산 어승생악을 대신 올랐던 안타까운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직은 골짜기 응달에 잔설이 남아있고 조릿대만 가득한 탐방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영실탐방로를 씩씩하게 오르기 위해 반팔 티셔츠에 니커바지를 입으니 체온이 적당히 맞아 기암괴석이 즐비한 영실의 병풍 같은 절경을 감상하며 오르기에는 제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막힘없이 보이는 서귀포와 중문까지 뻥 뚫려있는 시야에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고, 발걸음은 어찌 그리 가볍던지 지금도 설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뒤의 오름 위에서는 운무가
신비로움을 더해주니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윗세오름에 빠르게 다가가고, 눈앞의 산등성이는
동쪽에서 해님이 넘어오기 직전의 어둠에 깔리고

장엄하게 아침햇살이 산등성이를 넘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어찌해야 하나 노심초사하던 시간들을
단숨에 지워버리면서, 걱정하는 미래의 9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입증했다

윗세오름 전망대를 눈앞에 두고 급경사  탐방로 가에
의연히 서있는 멋들어진 주목들을 하나 둘 지나면서
윗세오름 전망대입구까지 펼쳐진 편안한 데크길에
들어서, 약간 쌀쌀했지만 경쾌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작년 늦은 봄 산철쭉이 울긋불긋하던 경치는 아니지만 비를 걱정하던 시간들을 잊고, 적당히 구름이 드리워진 윗세오름과 어리목탐방로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니, 비만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했던 바람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속세를 떠난 수도승 심정으로 속세를 잊고 윗세오름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고 한참을 아직은 차가운 한라산의 강풍에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 입고 윗세오름 앞으로 앞으로 기꺼운 마음으로 전망대를 내려왔다.

영실탐방로 초입부터 시작된 조릿대 군락이
윗세오름 정상까지 잔설을 뚫고 봄을 맞는다

윗세오름 전망대를 내려와 평편한 데크길을
한참을 지나 윗세오름이 백록담을 품은 채로
반겨주는 윗세오름 북벽과 남벽 사이에 있는
'윗세오름 해발 1700m' 표지석을 지나쳐서,
돈내코 탐방로 방향의 남벽으로 걸음을 옮겨

아직은 잔설이 가득해 아이젠이 절실했던
골짜기를 지나 돈내코 탐방로로 이어지는
남벽 앞에 잠시 머무르다 조심조심 눈길을
다시 지나 윗세오름 휴게소에 잠시 앉았다

변화무쌍한 한라산 답게 갑자기 짙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아름답던 파란 하늘도
윗세오름의 백록담 북벽도 구름이 덮어버려
비라도 내릴까 윗세오름 터줏대감 까마귀와
서둘러 작별하고 까마귀가 한참을 따라오는
데크길을 빠른 걸음으로 하산길을 재촉했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온통 짙은
구름으로 뒤덮여 갑자기 시야 확보가 어려워
조심조심, 그러나 비를 피하겠다는 일념으로
빠른 걸음으로 영실탐방로 입구에 도착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한라산 윗세오름 정상 탐방은
이른 새벽부터 피그말리온의 절실함으로 의심 없이
시작했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윗세오름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만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예측할 수 없는 삶 속에서
걱정만 하다 아무것도 못했던 안타깝던 그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진인사대천명하는 마음가짐으로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옭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영실을 떠나 점심식사 하러 가는 길에 폭우를 만나
내려올 때 올라가던 탐방객들이 무탈하기를 바라며
꽃 한 송이도 허락하지 않았던 윗세오름의 야박했던
봄 풍경을 떠올리며 감출 수 없는 미소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