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22.
'보롬왓'은 '바람이 부는 밭'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입니다.
어찌 보면, 제주는 제주도로 불리기보다는 탐라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듯한 독특한 언어와 풍습이 뭍과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섞인 듯 섞이지 않는 고유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바다를 사이에 두고 보존되고 있는 양파와도 같은 곳이란 생각이 드는 매력적인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의 가성비가 떨어진다 하여, 가까운 해외로 물밀듯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가성비가 조금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어차피 여행이라는 것은 편히 쉬고자 하는 휴식과 편안한 관광의 목적도 있겠지만,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과 벗하여, 비가 내리면 비도 맞고, 햇볕이 따가우면 땀도 흘려가면서, 걷기도 하고, 그늘에 쉬어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사진으로 정성껏 남기기도 하는 등, 추억을 겹겹이 쌓아가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야박하게 가성비를 따지기보다는, 나를 가성비에 맞춰 즐기는 것도 때로는 낭만이 있는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봄비를 흠뻑 맞으며,
바람에 이리저리 휘어지는
너른 유채밭의 유채꽃과,
끝없이 펼쳐진 정열의 빨간 튤립과,
사랑스러운 노란 튤립과,
순결해 보이는 하얀 튤립과,
봄을 품고 있는 듯한 미색의 튤립이 함께하는 보롬왓의 봄은 비로 인해 저절로 커져버린 감성이 비옷을 입혀 꽃밭으로 내 보냅니다.
비슷한 감성의 몇몇 사람들이 꽃밭 주변을 잠시 다녀 갈 뿐, 대부분은 카페의 대형 통유리 창을 통해 비와 형형색색 튤립과 비에 젖어 샛노래진 유채꽃의 환상적인 조합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향 좋은 커피를 앞에 두고 추억을 쌓는 모습조차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꽃밭 이랑 사이사이에 고인 물을 피해 가며, 바람에 적응하기에 적당히 아담한 키의 튤립 앞에 쪼그려 앉아 눈맞춤하는 사이, 어느새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튤립의 색감이 한층 선명해지니, 혹시라도 야간 조명이라도 켜지지 않을까 하는 지나친 기대를 잠시 해보지만, 오후 여섯 시에 문을 닫는다는 관리인의 외침에 현타(現time)가 찾아와 봄비 속에서 헤매던, 제삼자가 보기에는 무모했을 감성을 추스르게 합니다.
봄비 속에 어둠이 깔리는 보롬왓 꽃밭을 뒤로하고, 운 좋게 조우한 유채꽃과 형형색색 튤립들과의 짧았지만 잊히지 않을 봄비와의 상큼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추억 속의 행복한 미소로 남게 되길, 살다가 힘든 순간이 닥칠 때마다 꺼내보며 위안받는 위로의 사진을 담아 보관하는 인생첩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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