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23.
야자수마저도 누런 색으로 변해버리고, 까만 현무암이 겨우내 칙칙했던 협재해변에 봄의 전령사 무꽃과 유채꽃과 복사꽃, 그리고 갈매기떼가 봄을 한껏 몰고 왔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여전하건만 흐린 날씨가 비양도를 감추어버린 채 협재해변이 자칫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협재해변의 봄은 가녀린 무꽃이 긴 목을 빼고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비의 섬 비양도를 향해 그리움을 한가득 품고 있는 듯한 형상이 늘 잊히지 않는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양도 해변에도 늦은 봄까지 무꽃이 가득한 것은 협재해변의 무꽃이 해풍을 타고 바다를 건너 비양도에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자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무꽃이 해풍에 흔들리는 해변길을 살짝 벗어나 야자수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 무더기 유채꽃이 야자수길을 산뜻하게 꾸미고 반겨줍니다.
또한, 야자수길 삼거리 움푹 들어간 길섶에 숨어 활짝 핀 복사꽃이 야자수 숲이 막아주는 해풍을 피해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우아한 자태를 하고 봄비에 젖은 채로 수줍게 봄을 한 아름 품고 있습니다.
협재해변의 랜드마크인 야자수길이 끝날 즈음 예외 없이 야영객들의 텐트가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며 가득 들어선 볼썽사나운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즈음 금능해변이 산뜻하게 나타납니다.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깊지 않은 바닷속이 투명하게 드려다 보이는 에메랄드빛 금능해변이 아직은 썰렁하지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갈매기가 여유롭게 봄 바다를 가득 메운 채로 무리를 지어 비행하는 장관을 목도하고는 한동안 얼음이 되어 갈매기의 힘찬 날갯짓에 봄이 성큼성큼 빠르게 달려오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날씨가 조금 화창하고 바람이 조금 얌전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겨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비에 흠뻑 젖은 가녀린 연분홍 무꽃이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빗방울이 매달린 무거운 몸으로 흥겹게 춤을 추고,
야자수길에는 봄의 생기를 있는 그대로 불어넣어 주는 봄의 전령사 유채꽃과,
비록, 해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야자수 숲 속에 묻혀 활짝 핀 연분홍 복사꽃이 야자수 숲 속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두둥실 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다가도 리더를 따라 무리 지어 질서 있게 비행을 반복하는 갈매기의 봄맞이 로드쇼를 관람하기 안성맞춤인 금능해변은 갈매기의 봄맞이 로드쇼(Road Show)라 부르기보다는 봄맞이 씨걸(Sea Gull)의 씨쇼(Sea Show)라 이름 붙이고 싶을 정도로 봄의 온갖 매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협재와 금능해변의 바다 풍경은 하나도 나무랄 데 없이, 봄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하고 있는 꿈속의 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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