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31.
공식적으로 청보리 축제가 취소된 가파도...... 그러나, 관광객의 방문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두지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운진항(나의 기억으로는 가파도 마라도행 여객선이 2017년 까지는 모슬포항에서, 2017년 이후 부터는 송악산에서, 2019년 부터는 지금의 운진항에서 출발하고 있음)에서 첫 출발하는 오전 9시 정기여객선 부터 발디딜 틈도 없이 1,2층에 승객을 가득 태우고 연신 뱃고동을 울렸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붙어 앉아 10분도 채 되지않는 짧은 시간을 지나 무사히 가파도에 입도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파도를 가로질러 청보리 경작지 사잇길을 여기저기 누비면서 엎어놓은 쟁반같이 펑퍼짐한 초록 가파도를 맘껏 즐겼다.
물론, 일부 청보리밭은 벌써 갈아엎은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지만, 여행에 목말랐던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았다.
여전히 황사가 짙은 가파도에서 보이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
그리고,
송악산과 산방산이 흐릿하게 보일지라도, 1도 불평불만 없이, 이리저리 예쁜 포즈를 취하기에 분주한 모습들에서 생동감이 느껴졌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웃음꽃을 피우며 여유롭고 자유롭게 가파도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올레길 26개 코스 중, 가장 짧은 가파도 올레(10-1 코스)는 짧지만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4계절이 나무랄데없이 매력적인 섬이다.
가을 꽃잔치 때 코스모스가 빼곡했던 자리에는 유채꽃과 무우꽃이 만발해 있었고, 둘레길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30분을 넘지 못하지만, 그 마저도 자전거를 탄 동화속의 주인공 같은 숙녀들의 질주 속에서, 청보리와 유채꽃과 무우꽃이 가득한 가파도의 봄은 제법 활기가 넘쳐 보였다.
초유의 미세먼지만 아니였다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텐데......하는 아쉬움을 남긴채로.....
2시간여의 짧은 가파도 방문을 뒤로하고, 제주도 최서쪽에 위치한 기상관측소가 있는, 올레길 12코스가 지나는 한경읍 고산리의 수월봉에 올랐다
아직 황사가 짙은 용수포구 앞 흐릿한 차귀도를 내려다 보면서, 신비스런 구름이 적당히 들어찬 한폭의 동양화 같은 아름다운 섬 차귀도를 볼수 없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선인장마을로 잘 알려진 올레길 14코스가 지나는 월령포구를 향해 달렸다.
온통 선인장과 선인장의 열매인 백년초가 장관을 이루던 월령포구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축 쳐지고 말라가는 선인장 손과 겨우 매달려있는 백년초를 보고 있노라니, 차라리 월령포구를 찾아오지말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하게 깨끗해서 맑디맑은 월령포구의 바다가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좋은 기억을 소환하며 역시 올레길 14코스를 지나는 에메랄드빛바다와 예쁜 하늘과 비양도가 잘 어울리는 협재해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야자나무 숲속 곳곳에는 수많은 텐트들로 야영지의 총아가 된듯한 협재의 현주소......
국제적인 야영명소가 되어 물반 고기반 내국인과 외국인이 적당히 섞여 있어 보기에는 조화로웠으나, 영어강사들인양 10여명의 남녀흑인들이 마스크없이 한데 모여 목청껏 웃고 떠드는 모습이 매우 신경이 쓰였지만, 이젠 패기도 따라 늙었는지 용기가 나질않아 그냥 남의 일인양 지나쳤다.
역시나, 협재의 하늘도 예전의 깨끗한 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아쉬웠지만, 서서히 황사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오후에 협재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비록, 초유의 황사와 초미세먼지로 에메랄드빛 바다는 온데간데 없고 파란 하늘이 사라진 협재해변에서 바라보이는 아련한 비양도의 흐릿한 자태는 오히려 신비로움을 더 해주는듯 싶었다.
조금 아쉬웠던 협재해변을 뒤로하고, 계속 뒤 따라오는 비양도를 곁눈질로 이따금씩 바라보면서 2017년에 새로이 개장된 올레길 15(B) 코스가 지나는,
순박한 어부들이 영등할망이라는 절대적인 해신을 숭상하는 복덕개 포구로 발길을 옮겼다.
(해신)영등할망, 영등할아방, 영등할망의 며느리, 영등할망의 딸, 영등별감, 영등호장, 영등우장등 큰복어를 닮은 포구라서 붙여진 복덕개 어민들이 풍어와 안전한 조업을 간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해신을 모시는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듯, 동네와 바다 곳곳에 해신들의 석상이 잘 모셔져있었고,
동네 어귀에서 부터 동네 안쪽 까지 돌로 잘 닦아놓은 길은 제주 고유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고풍스럽기 조차한, 언제고 다시 찾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인 제주의 명소가 바로 이곳 복덕개 포구이다.
복덕개포구에서 비단교를 건너면 애월이 시작되는,
여전히 올레길 15(B) 코스를 지나는 곽지해수욕장이 애월의 멋진 한담해안 산책로를 연결해준다.
앙증맞게 마스크를 하고 첨벙첨벙 얕은 바다를 호령하는 사내아이와 다소곳이 쪼그려 앉아 모래성을 쌓는 계집아이의 마음 속에는 어느새 여름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카약을 저으며 바다를 즐기고, 써핑으로 여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코로나19팬데믹도 초유의 황사가 몰고온 초미세먼지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아 보였다.
아직 유채꽃이 만발해있는 한담해변산책로에서 멀리 보이던 애월의 카페촌이 점점 시야에 가깝게 들어오고,
애월바다 끝에는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봄날카페에 길게 줄서있는 젊음이 있었다.
생동감이 넘치는 젊음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곽지해수욕장과 애월바다에서 제주 봄여행 두번째 스케치의 마침표를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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