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한여름 밤의 바비큐 파티

Chipmunk1 2024. 8. 17. 04:23

2024. 08. 01.

펜션에서는 야외바비큐를 즐겨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열대야가 시작된 한여름에 대부분 에어컨 시원한 펜션에서 저녁식사 후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을 때, 이열치열의 갸륵한 마음으로 우직스럽게 격포의 하나로 마트에서 고기와 쌈과 쌈장과 버섯과 햇반을 사서 아무도 없는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지나 밤이 되어도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빨간 숯불 앞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고기를 굽고 새송이 버섯을 구워 아귀아귀 쌈을 싸서 펜션의 밤을 고기 굽는 냄새로 뒤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케한 숯 타는 냄새와 지글거리며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고기를 보면서 펜션에서의 바비큐 파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펜션에 숙박 중인 다른 투숙객들은 찾아볼 수가 없는 바베큐장 주변을 맴도는 바짝 마른 고양이들은 오랜만에 고기 굽는 냄새를 맡은 듯,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장마와 장마 끝에 시작된 폭염으로 한동안 야외 바비큐장은 이용자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고양이들은 그나마 고기 굽는 냄새조차 맡기 힘들었을 테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만, 숯불 근처를 부단히 왔다 갔다 하면서 하위 서열 고양이들의 접근을 허락지 않는 왕초 고양이가 고기 한점 입에 물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무아지경으로 고기를 먹으면서도 동시에 가여운 하위 고양이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고기 이외에 버섯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하위 고양이들이  살금살금 다가와 물고 사라지는 풍경이 강자가 독식하는 인간들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땀 속의 바비큐 파티가 끝나고, 남은 잡곡밥에 쌈장을 비벼서 놓아주니, 왕초고양이는 쌩하고 지나치고, 먼발치서 기회만 엿보던 가여운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밥그릇 근처에 모여들더니, 왕초의 눈치를 살피다가 왕초의 허락이 떨어진 듯 별다른 다툼 없이 나눠 먹는 모습이 조금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고기를 좀 더 넉넉히 준비해서 고양이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땀을 한 말은 족히 흘렸을 것 같은 폭염 속 한 여름밤의 바비큐 파티가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