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입춘을 바라보는 내장사의 겨울 풍경

Chipmunk1 2024. 2. 11. 09:38

2024. 01. 30.

언제부턴가 내장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앞 다리를 건너기 전, "부모님 은혜"라는 내장사 대우 스님의 시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을 즐기곤 합니다.

지난주 내내 폭설로 몸살을 앓던 내장산 일대였는데, 주말 내내 화창했던 날씨가 눈을 많이 녹게 했고, 생각 외로 우화정 옆에 주차를 하고 내장사로 가는 길은, 아이젠과 스패츠도 준비해 갔건만, 기온도 적당하고 눈도 적당해서 장비 없이 상쾌하게 걷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눈이 거의 녹은 쭉 뻗은 단풍 터널길을 지나니, 천왕문이 반갑게 맞아주고, 천왕문 안 왼쪽에 꽁꽁 얼어붙은 연못은 풍수지리에 의거 화기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 조성되었다 전해지지만 화재는 그 뒤로도 625 전쟁과 2012년의 전열기 과열과 2021년의 방화에 이르기까지 3 차례나 더 있었으니, 연못의 존재감이 무색하기만 합니다.

코로나19 펜더믹 이전에는 지금은 다른 곳으로 떠나셨다는 주지스님이 덕으셨다는 녹차와 군고구마를 방문객들에게 제공했던 정혜루가 이제는 덩그마니 내장사의 파수꾼 노릇만 하고 있습니다.

무릇 사찰의 중심에는 대웅전이 있어 사찰 전체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묘한 조화의 미학을 엿볼 수 있건만, 방화로 소실된 대웅전은 2012년 10월의 화재 때는, 거의 30여 억 원의 국민 혈세가 지원되어 재건축되었건만, 불과 9년도 채 되지 않아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서기 636년에  창건된 이래로 다섯 번째 전소되어, 임시 가건물 형태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내장사의 대법당은 1,400년 가까이 된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조화의 미학은커녕 눈길조차 주기 싫은 안타까운 시간이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2012년 화재로 화재보험은 가입했으나, 방화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다 하니, 이제는 국고 지원도 쉽지 않은 듯 보여 대웅전 재건축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내장사를 나와 이십여분 떨어진 정읍 9경 중 8경인 쌍화차거리 변두리에 위치한 "차마루"라는 손님들이 제법 들어찬 전통찻집에서 혼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쌍화차를 주문하고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아무런 기대 없이 쌍화차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친절한 청년이 따스한 차가 담긴 보온 물통과 땅콩을 한 보새기 날라다 주고, 뒤이어 여전히 끓고 있는 쌍화차를 올려주고, 끝인가 했더니, 꾼떡 한 접시와 복분자청을 내어주니, 땅콩은 반도 더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든든하게 쌍화차 세트로 점심을 대신했네요.

대부분 쌍화차거리의 찻집들은 나 홀로 손님을 홀대해서 딸랑  쌍화차만 한잔 주고는 빨리 마시고 나가라고 재촉 아닌 재촉을 하는 분위기에 비해, "차마루"는 나그네가 정읍의 쌍화차거리에서 만난 가성비 최고의 친절하고 귀한 전통찻집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내장사의 대웅전 자리에 덩그마니 임시 자리한 대법당을 보고 심란했던 마음이 친절한 찻집에서 쌍화차와 땅콩과 꾼떡과 친절한 서빙으로 위로를 받고, 다음 내장사 방문 때는 대웅전 재건축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내장사의 겨울 풍경을 기억 속에 예쁘게 남겨보려 노력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