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 30.
공교롭게도 눈이 쌓인 한겨울에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사진에서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에 보일 듯 말듯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장산의 주봉인 서래봉을 위시해서 서래봉 바로 아래 자리한 벽련암과 우화정과 내장사는 전망대 아래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서로가 같은 것을 바라볼지라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는 천양지차로 평가를 내리고 서로 너 잘났느니 나 잘났느니 입에 거품을 물고 상대방에게 눈을 부릅뜨고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손가락질해 대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끝없이 늘어나는 욕망과 이룰 수 없는 현실의 갈등 속에서, 또한 나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숨 가쁘게 변화하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숨 쉬고 부닥치고 살아가는 세상이 복잡하고 각박해서 살기 힘들다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18세기에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던 주장과, 그 보다 앞서 중국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떠나면서 읊은 대표작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노장 사상의 영향을 받아 전원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는 자연예찬을 삶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노래했던 것은 자연이야 말로 인간의 모태이자 행복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장산 전망대에 올라서서 문명과 단절된 듯싶은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며, 나그네는 속세를 떠난 심정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온갖 불편한 상념들을 모멸 차게 떨쳐내 보려 합니다.
서래봉을 중심으로 첩첩산중이란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도시를 가득 채운 아파트도 자동차도 볼 수 없는 이곳이야 말로 오래전부터 인류가 꿈꿔왔던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장사 인 듯 잠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서래봉을 병풍 삼아 아늑하게 자리한 벽련암을 내려다보는 편안함이 또한 자연이 주는 선물인 듯싶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변신에 변신을 다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우화정과 연못의 모습이 지상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벌거벗은 듯 숨김없이 다가옵니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전망대에 이르는 능선 양쪽에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겨울에 유독 초록빛으로 인간들의 건강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겨우내 무차별 채취되고 있는 겨우살이가 따가려면 따가라는 듯이 산비탈 높은 나무에 새둥지처럼 둥글게 일가를 이루고 있고, 겨우살이임을 인지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눈으로만 보고 가야 하는 안타까운 욕망으로 이어진 발걸음들이 마냥 무거워 보입니다.
나무 쪼는 경쾌한 소리에 딱따구리가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나무 가지에 매달려 나무 가지 속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애벌레를 찾아 정신없이 쪼아 먹는, 지난겨울인가 영주 부석사 경내에서 마치 목탁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나무 쪼는 소리가 크게 들렸던 귀여운 곤줄박이들과 반갑게 조우합니다.
벽련암은 한눈에 들어오건만 내장사는 어디에 숨어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능선길 서래봉 방향 나뭇가지 사이로 눈에 익은 내장사가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잠시 잠깐 루소를 소환하고, 도연명을 떠올렸던 내장산 전망대를 뒤로하고, 하행선 케이블카에 몸을 싣습니다.
이제 또다시 속세로 내려가 자연을 떠나 지지고 볶고 하는 사바세계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이따금씩 자연 속에서 한시름 놓고 쉬었다가는 기쁨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나그네는 잘 알고 있기에, 비록 몸은 속세에 있어도, 마음만큼은 자연의 품에 안긴 기쁨과 행복 속에서 늘 자연을 찾는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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