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일월 마지막날 담양 죽녹원

Chipmunk1 2024. 2. 20. 07:45

일월의 마지막날, 실로 오랜만에 담양의 죽녹원을 찾았습니다.

영화촬영지였다는 표지판, 맹종죽이 무엇인지? 죽로차가 무엇인지? 대나무와 관련된 차와 죽순에 대하여 몰랐던 지식도 알려주고, 추월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운치 있게 대나무로 틀을 만든 포토존이 그림처럼 세워져 있었습니다.

겨울답게 산책로에 잔설이라도 남아 있기를 기대했건만, 닷새 전까지 내렸던 폭설이 죽녹원엔 자취도 남아있지 않은 것은 겨울 햇살을 대나무숲이 따스하게 가두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도 죽녹원이 서늘하다 느꼈던 기억은 대나무숲이 시원한 바람을 가두고 있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죽녹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인봉 둘레길은 울릉도에 있는 성인봉과는 달리, 마치 경주의 능처럼 흙을 쌓아 아담한 봉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 둘레길을 세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스토리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천천히 세 바퀴 돌면서 소원을 빌었지요.

4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플이 대나무에 이름을 새기고 있기에, 제지를 해봤지만, 나그네가 지나가서 뒤돌아보니, 남정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 철없어 뵈는 여인은 저렇게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참 열심히죠?

증거 사진을 찍어 신고하려다가, 경고 팻말만 여기저기 세워놓고, 신고센터 하나 변변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킴이 하나 없는 담양군의 행정이 너무 안일해 보임에 신고하고픈 의지가 꺾이고 맙니다.

죽녹원을 찾은 진짜 이유는 그리운 바보 노무현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혹시, 홍범도 장군 흉상처럼 철거된 건 아닐까?
다행히도 그리운 바보 노무현의 모습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음에 어찌나 반갑던지요!

저 높은 곳에서 허물어져가는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시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고 계시지는 않을는지?

며칠 전 봉하마을에서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시던 손녀딸이 대학생이 되어 그때를 회상하는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고,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고 읊었던 길재의 회고가가 씁쓸하게 나그네의 입안에서 죽녹원을 걷는 내내 읊조려집니다.

면앙정,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의 광풍각은 물론이고, 송강 정철이 4년간 머물렀다는 송강정까지 한 곳에 옮겨놓은 죽향문화체험마을의 풍광이 대나무숲과 어찌 그리 잘 어울리던지요!

TV예능 프로그램 "1박 2일"도 어느새 다녀갔네요.

한옥카페에서 죽로차를 음미하려다가, 티백으로 준다기에, 차라리 분말로 되어 있는 댓잎차라떼를 한잔 하고, 죽녹원 근처 죽통밥과 떡갈비 전문점에 갔으나,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다기에, 쫓겨나듯 나와서 국수거리 건너편 국수당이란 식당에서 잔치국수와 숯불불고기가 세트로 구성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일월의 마지막날을 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