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 29.
아직은 봄이 요원하기만 하건만, 폭설을 동반한 한파가 막바지로 다녀간 입춘을 불과 일주일 남긴 백양사 가는 길은 눈이 거의 녹아있으나, 일광정 앞 약수천 작은 호수 가상자리에는 얼음이 그대로 남아있는 채로 흐릿한 아침하늘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백학봉의 데칼코마니가 아쉬운 대로 푸른 하늘 틈바구니에서 약수천에 내려앉고, 일기예보는 일교차가 15도를 상회한다 하니, 따스한 봄기운이 시나브로 찾아올 날도 머지않았다 싶습니다.
일광정 앞 호수에 살던 오리 떼들이 쌍계루 앞 호수로 놀러 온 듯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하니, 이 또한 백양사의 특별한 겨울풍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눈이 그대로 쌓여있는 쌍계루 다리를 건너 백양사 경내로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몸도 녹일 겸 쌍화차 한잔 앞에 두고 창밖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바라보노라니, 초가지붕 끝에 거꾸로 매달린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고 녹여 먹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불현듯 그 초가집에 함께 살던 부모형제가 몹시 그리워집니다.
백양사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청운당 앞 연못 둘레에는 여전히 녹지 않은 눈이 가득하고, 연못은 꽁꽁 얼어붙어 비단잉어는 물론이고, 백학봉의 데칼코마니도 사라진 한겨울의 풍광이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게 합니다.
청운정 연못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대웅전이 바라보이는 먼발치 오른쪽에 아직 까지는 앙상하게 서있는 백양사의 명물 고불매가 머잖아 꽃망울을 맺기 시작하면 시나브로 봄이 찾아오겠지요.
백학봉 아래 대웅전을 제외한 사찰건물들 기와지붕 위에 눈이 그대로 덮여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대웅전 뒤뜰에 초연히 서있는 팔층석탑을 중심으로 노란 열매가 다 떨어진 앙상한 모과나무가 백양사는 아직도 추운 겨울이라고 대변하는 듯합니다.
범종각과 사천왕문 사이에 수려했던 보리수도 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앙상하기만 합니다.
경내를 나와 발걸음이 저절로 약사암 입구까지 움직이니, 나뭇가지를 덮던 눈이 조금씩 바람에 날려 흩날리고 계곡을 흐르는 작은 폭포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얼음 속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물을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급할 것 없는 여유로움에 천천히 쌍계루 앞으로 내려오니, 어느새 구름이 옅어진 하늘에는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이 약수천위에 드려지고 데칼코마니가 온화해진 날씨에 걸맞게 이른 봄에 보여주던 매력적인 백학봉과 쌍계루를 이 겨울에 멋지게 담아냅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영하 7도였던 기온이 서너 시간 만에 영상 10도를 육박하는 것은, 눈부시게 중천을 향해 떠오르는 산속의 태양이 어느새 일광정 앞 호수 가상자리에 남아있던 얼음을 거의 다 녹이니, 하릴없이 백양사에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다가올 입춘을 기다리고 있는가 봅니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도 따스한 봄볕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듯이, 희망이 사라진 동토 같은 황량한 이 땅에도 언젠가는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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