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제주의 겨울을 찾아서(7) (사려니숲길-붉은오름입구)

Chipmunk1 2024. 1. 19. 00:27

2024. 01. 10.

제주도의 팔색조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려니숲길은 이른 봄 숲길 안쪽에 나지막하니 수줍게 핀 복수초로 시작해서 벚꽃이 피고 때죽나무가 하얀 양탄자를 깔아놓을 즈음 여름이 시작되고, 여름이 시작되면서 형형색색 산수국이 반겨주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노라면 숲길 곳곳에 거대한 산딸나무가 성스럽게 꽃을 피우고, 뒤이어 누리장나무가 상아빛 꽃을 피우고, 가을이 오면, 단풍과 단풍 사이 빨간 꽃받침 위의 사파이어 보석을 닮은 고급진 누리장나무 열매가 겨울을 부릅니다.

2016년 4월 이래로 찾기 시작했던 사려니숲길을, 이제는 몇 번을 왔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제주에 올 때마다 한두 번씩 오곤 하는 제주의 최애코스 중의 하나이기에, 겨울은 2019년 1월 4일, 2023 년 1월 7일에 찾았던 기억이 있는데, 하얀 눈이 쌓인 사려니숲길의 겨울은 꽃이 있고 단풍이 있는 다른 계절들의 사려니숲길과는 다른 마치 루돌프사슴이 썰매를 끌고 나타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겨울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끔은 숲 속 눈밭을 뛰어다니다 길로 나오는 노루와의 조우도 기억 속에 남아있으나, 흰 눈이 가득한 사려니숲길을 기대하고 찾았던 사려니숲길의 2024년 1월 10 일은 숲길 곳곳에 잔설만이 조금 남아있을 뿐, 삼나무 숲길 사이에 놓인 데크길 위에는 마치 봄날 같은 기운이 흐르고, 혹시 복수초가 피어있지 않을까 사려니숲길을 걷는 내내 숲길 안쪽을 두리번거리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눈이 쌓여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붉은오름입구의 붉은 카펫이 깔린 듯 개성 있는 멋진, 건강에는 무조건 좋을 듯싶은, 백록담에서 흘러나온 화산재인 화산송이(천연 세라믹)가 내려와 앉은 뽀송뽀송한 붉은 길을 한겨울에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색다른 경험임에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파란 하늘 아래 하늘을 찌를 듯 늠름하게 서있는 사철 푸른 원시림 같은 삼나무숲 사잇길을 무상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음은 제주를 찾는 참을 수 없는 기쁨이고 숨길 수 없는 행복입니다.

길을 남겨두고 하늘 높이 카메라를 올려봐도 삼나무 끝은 야속하게도 카메라에 담기지 않고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이 구름 한 덩이 품고 넉넉하게 사려니숲길의 겨울을 만들어줍니다.

붉은오름 입구를 시작해서 삼나무 숲길을 지나 비자림입구까지 10km는 조물주가 창조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겨울숲길을 연출합니다.

그래도 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아직은 겨울임을 입증하고픈 사려니숲길은 겨울을 주제로 그려낸 이름 모를 어느 화가의 최고의 작품인 듯 완성도를 더해갑니다.

세인들이 아무리 제주의 물가가 비싸다고 하더라도, 사려니숲길을 무상으로 즐길 수 있음은, 비싸다는 제주의 물가를 보상받고도 훨씬 크게 남음이 있기에, 나그네는 제주도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여행지가 지구상에는 없으리란 확신에 확신을 더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