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29.
여명을 뚫고 새벽 다섯 시에 길을 나서니 세상이 너무나 고요하고, 차창을 모두 열고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마시는 행복을 누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대시보드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던 마스크가 창밖으로 날아갔네요.
이래서 옛 성현들이 호사다마라고 했나 봅니다.
대웅전 뒤편에 자리한 동백나무 숲이 오늘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대웅전 앞의 만세루가 선운사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선운사 만세루(禪雲寺 萬歲樓)’를 ‘고창 선운사 만세루(高敞 禪雲寺 萬歲樓)’라는 이름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고 며칠 전 신문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대웅전을 오르는 돌계단 왼편에는 수선화가 피기 시작했고, 젊은 스님 한분이 무언가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아침 햇살과 함께 어우러진 선운산은 선운사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경내 한켠에는 며칠 전 내린 봄비에 어지러운 복장을 하고 있는 목련이 아직 봄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일주문 밖 공원에는 동백나무 숲에서 보기 어려운 겹동백이 장미인양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선운사의 봄은 코로나19 팬더믹 때문에 한 달 연기된 부처님 오신 날 행사와 상관없이 약간 쌀쌀했던 3월의 마지막 일요일을 정결하고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습니다.
대웅전 뒤편,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맑고 청아한 온갖 새소리가 봄하늘과 어우러져 목청껏 노래하고, 낙화들도 시들지 않고 빨갛다 못해 검불게 봄 하늘 아래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선운사길로 하나둘씩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극락교를 건너 장애인을 위해 만든 나무데크길로 홀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젠 가을 꽃무릇 필 때나 다시 찾아오겠지요.
그때는 잃어버린 일상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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