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22.
핑크뮬리(Pink muhly)라고 널리 알려진 털쥐꼬리새는 미국중서부가 원산지이기에 털쥐꼬리새 보다는 핑크뮬리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학원농장 입구로 진입하면서 언뜻 핑크뮬리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본듯해, 의심도 않고 당연히 학원농장에 가면 어딘가에 핑크뮬리 군락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지도 않았던 기대를 안고 학원농장 여기저기를 훑어보았건만 핑크뮬리 군락을 찾을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학원농장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퉁명스럽게 학원농장에는 핑크뮬리가 없다고 잘못 왔다길래,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봤노라 했더니, 거기는 학원농장이 아니라기에,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귀찮아 죽겠다는 말투로 짜증을 잔뜩 섞어 "청농원 이에요"라고 쌀쌀맞게 한마디 툭 던지고 전화를 끊습니다.
오로지 생각지도 않던 핑크뮬리를 본다는 설렘으로,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학원농장의 카페에 잠시 들르려던 일정을 바꿔서 핑크뮬리 축제가 열린다는 청농원으로 네비를 찍어 보니, 학원농장 주차장에서 불과 850여 미터 떨어져 있길래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축제 첫날이라 그런지, 홍보가 덜 돼서 그런지, 한산한 청농원 입구에는 입장권을 판매하는 초로의 노인 한분이 언덕 아래로 쭈욱 내려가라고 친절한 미소로 안내합니다.
금년에는 비가 너무 잦아서 그런 건지,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곳에서 잘 자라 적당히 습한 곳이 좋지만, 건조에도 강해 척박한 토양에서도 시들지 않으며, 특히 질병에도 강하고 그늘에서도 잘 버텨주는 핑크뮬리라고는 하지만, 청농원 언덕아래 주차장 위아래로 식재되어 있는 핑크뮬리 중 주차장 아래 나무수국이 늘어선 지역의 핑크뮬리는 꽃이 제대로 피지도 않은 채로 이리저리 누워 있어서 그랬는지, 입장료 5,000원 중 천 원을 할인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홍억새라고도 불린다는 핑크뮬리가 만개한 주차장 위쪽 언덕은 그야말로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잘 자란 핑크뮬리가 분홍꽃을 활짝 피운 채로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듯싶은 핑크뮬리 군락 사이를 지나노라니, 소슬바람에 스치는 핑크뮬리의 부드러운 촉감과 파란 하늘 사이사이 뭉게구름과 새털구름이 핑크뮬리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나그네를 핑크뮬리 파도 속에 꼼짝없이 가둬 버립니다.
금년 가을은 더 이상 핑크뮬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스러운 고창 청농원의 핑크뮬리가 주차장 아래 더 넓은 군락지까지 만개한다면, 지금 까지 갔었던 핑크뮬리의 성지라 손꼽히는 그 어느 곳 보다도 아름다운 새로운 핑크뮬리의 성지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부터, 가을이 오면 고창은 꽃무릇(선운사) 뿐만 아니라, 메밀꽃(학원농장)과 만개한 핑크뮬리(청농원)까지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가을의 축제장이 되어, 나그네에게 소확행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아낌없이 건네줄 듯합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핑크뮬리를 만날 수 있도록 고창에 오게 한 선운사의 꽃무릇이 고맙고, 가을꽃 대신 메밀꽃을 만나게 해 줬을 뿐만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의 청농원을 알게 해 준 학원농장에게 고맙다는 마음의 인사를 남겨놓고, 나그네는 아쉬움 속에 고창을 떠나 가을의 꽃무릇길을 따라 영광의 불갑사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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