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22.
봄비 치고는 조금 거칠게 내리는 비를 피해 온 표선의 보롬왓 카페에는 이른 봄부터 이른 여름에나 볼 수 있는 다양한 꽃들이 생동감 넘치는 봄을 눈이 두 개인 것이 아쉬울 정도로 눈을 고정해 둘 곳을 찾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그중에서도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화려한 모습 그대로 노지에서는 느끼기 쉽지 않은 싱그러운 수국이 원색의 자태 그대로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반갑게 반겨 줍니다.
보랏빛이 물들기 시작한 새로 피기 시작한 보라수국이 수국만의 매력을 발산하며 보라돌이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계절을 뛰어넘는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수줍은 소녀가 숙녀가 되어가는 성숙함을 조금씩 쌓아가는 진분홍을 완성해 가는 수국에 내 얼굴도 따라 붉어지는 것은 고 2 봄에 만났던 예쁜 진분홍 수국 같았던,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그 소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착각이 드는 것이 요즘 부쩍 그때 그 소녀의 궁금했던 안부를 확인하는 것 같아 잠시 미소를 지으며 지긋한 눈으로 수국소녀를 바라봅니다.
완전해진 보라돌이 수국이 붉은빛을 품고 여인들의 혼을 쏙 빼놓는 듯, 삼삼오오 지나가는 소녀 같은 중년 여인들이 수려한 수국에 취해 다양한 포즈를 만들어가며 정겨운 그녀들만의 풍성한 수다와 함께 보라수국과의 추억을 쌓아가는 모습에서 잠시나마 숙녀가 소녀로 되돌아간 듯 보입니다.
진분홍에서 빨강수국으로 한층 성숙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수국 앞에서 무장해제 된 채로,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아직은 쌀쌀한 봄날 저녁 교문을 나서 촉촉이 땀이 밴 따스한 소녀의 손을 꼭 잡고 걷던 봄날의 그 길이 마치 지난 며칠 전 같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수국 송이송이에 지난날의 순수한 그리움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렇게 비 내리는 봄날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초여름의 화려한 수국에 취해 찰나에 먼 시간 여행을 하게 된 행복한 봄비 내리는 오후에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오고 6월에 다시 만날 수국과의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긴 채로 보롬왓 카페를 나섭니다.
'제주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바다가 아름다운 곽지해수욕장과 한담해변산책로, 그리고 애월해안의 봄봄봄 (10) | 2023.04.06 |
---|---|
유채꽃와 튤립이 봄비 속에서 세찬 바람을 견뎌내고, 봄은 바야흐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보롬왓 바깥 풍경을 천천히 음미해 봅니다 (13) | 2023.04.05 |
중문색달해변의 봄 해넘이 (10) | 2023.04.03 |
사려니숲길의 봄비는 상큼했고, 새소리는 정겨웠지요 (8) | 2023.04.02 |
봄비 내리는 한라산 1100고지 탐방로에도 봄이 왔네요 (6) | 2023.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