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 들어 첫 방문하는 봉정사는 작년 11월 마지막 방문 이래로 뭐가 그리 바빴는지, 정월 대보름이 되어서야 혹시 봄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을 안고, 천등산봉정사라고 현판이 붙은 일주문을 지나고 표지석을 지나고, 작년 가을에 보수 공사를 끝낸 봉정사의 관문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 앞 뜰을 살펴보고,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에 자리한 석조여래좌상 주변도 살펴보고, 극락전과 삼층석탑을 둘러봐도 어느 곳에서도 봄이라 할 수 있는 단서를 전혀 찾을 수가 없네요.
마지막으로 극락전 아래 범종각을 향하면서, 드디어 봄이 오는 단초를 발견합니다.

극락전 아래 담장 앞에 시커멓게 헐벗고 서있는 청매 나뭇가지에 파릇파릇한 청매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세루 앞을 지나 대웅전 아래 왼쪽에 있는 제법 길쭉하게 뻗어있는 청매나무 앞에 서니, 역시나 파릇파릇한 청매화 꽃망울이 알알이 알알이 맺혀 있으니, 드디어 봉정사에도 봄의 기운이 몰려오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나그네의 발길은 한번 더 봉정사 경내를 꼼꼼하게 돌아보다가, 더 이상 봄의 단서가 될 만한 작은 꽃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대웅전 왼쪽 영산암 올라가는 길로 나와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는데, 천등산 등 뒤로 아침햇살이 살짝 비치는가 싶기에 고개를 돌리다가 빨간 열매가 맺힌 산수유 열매 같기도 하고 먼나무 열매 같기도 한 아담한 나무 한그루를 발견하고, 궁금한 마음에 확인 차 천천히 다가갑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세상에나! 깜짝 놀람과 반가움이 한데 뒤섞여 나그네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탄성을 지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홍매화가 수줍은 듯 밭 아래 숨어서 활짝 웃고 있습니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계곡 위에도 조금 더 큰 홍매나무가 홍매화를 잔뜩 품에 품고 나그네를 유혹합니다.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예쁜 아씨들을 하나 둘 정성스럽게 담아봅니다.
이렇게 봉정사에도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이 정월 대보름 아침에 나그네를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도 예상하지 못했던 홍매화를 마라 봄에 나그네에게 홍매화가 세상은 아직 까지 꽃이 있어 살만하다고 나긋나긋하게 속삭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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