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도 없는 깜깜한 새벽녘에
백양사의 일주문을 통과하여
텅 빈 주차장서 여명이 밝기를
기다리다 무심코 길을 나선다
호젓하고 어스름한 약수천변은
어느새 쌍계루 앞으로 인도한다
살얼음이 살짝 비치는 약수천에
흐릿하게나마 백학봉과 쌍계루가
습관처럼 데칼코마니를 연출하고
거슬러 온 약수천 끄트머리에서 부터
붉은 기운을 가득 안고 먼동이 터온다
대웅전을 우회해서 청운정
작은 연못 속에서 백학봉의
데칼코마니를 맞는 행복은
언제부턴가 루틴이 되었다
회색빛 백학봉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영하 칠 도를 밑돌던 동장군의 기세를
단번에 밀어내니, 대웅전의 뜨락으로
봄기운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오고
대웅전 뒤뜰 석탑 주변에 피었던
가을꽃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가을에 이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백학봉의 심란스런 마음속에서
거역할 수 없는 봄기운이 읽힌다
청운정 연못에 우뚝 선
먼나무의 열매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다시 찾은 청운정뜰앞
연못에 비친 백학봉의
산뜻한 데칼코마니가
봄기운을 가득 품었다
산사를 크게 한 바퀴 훑고 나오는
쌍계루 앞 약수천의 데칼코마니는
아직도 흐릿하게 투영되고 있지만
동장군의 흔적인 살얼음이 녹으면
선명한 데칼코마니가 나타날 게다
손톱만큼 작아진 백학봉이 멀리 보이고
아직은 큰 일교차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약수천의 살얼음 사이로
봄기운이 찾아와 힘차게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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