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몽족은 사파의 산속에서 생활하는 외소하지만 생활력 만큼은 세계의 어느 종족에 비해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검은색의 전통복장을 즐겨입고, 아직도 조혼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사파시내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라오차이에 큰 마을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
가이드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라오차이에서 태어나서 17세에 동갑 남편과 결혼해서 4살 짜리 아들과 2살 짜리 딸을 둔 스물두살된 엄마였다.
남편은 집에서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하는 전업주부라 하니, 우리나라 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 사회인 이곳 사파의 블랙몽족들도 바람직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있는 아빠들이 트레킹하던 마을길에서 종종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가 40세라는 가이더의 눈에는 내가 본인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40세 정도로 보인다하니, 인종간의 사람보는 눈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것 같다.
밤새 세차게 내리던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더니, 트레킹을 시작할 무렵 부터는 안개비가 제법 내렸다.
사파시내의 사파성당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을 위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아침 마다 호텔 정문이 바라다 보이는 길 건너편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몽족 복장을 하고 커다란 우산을 들고 호텔 정문을 응시하다가, 트레킹 시간이 다가오면 호텔쪽으로 다가와 적당히 섞여서 함께 걸으며 이름을 묻기도 하면서, 나름의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등에 생후 2개월된 딸을 업고, 새벽 6시, 아직은 깜깜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산속의 집을 출발해서 본인들만 아는 지름길을 통해 1시간 반 정도 걸려 호텔앞에 도착해서 8시30분 트레킹 출발 시간 까지, 한시간 이상을 아이와 함께 길거리에 선채로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가이더 보조도하고 트레킹 속도 조절까지 열심히 뭔가를 쉴새없이 트레킹에 도움을 주려는 배려가 눈에 보였고, 어느덧 진흙 골짜기 비탈길를 내려 갈때는 미끌어지지 않도록 남자들에게는 대나무 지팡이를 구해다 주고, 여자들은 손을 잡아 안전하게 진흙 비탈길을 빠져 나갈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등, 트레킹에 참가한 모두는 일일이 표현은 안해도 어느새 동행한 블랙몽족들에 대하여, 수공예품 보따리 장사에게 갖는 경계감을 풀고 험지 트레킹을 함께하는 동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라우차이에 도착하면 그들의 손에 들고 등에 보물처럼 지고 있던 수공예품을 사주고 싶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공론화되고 있었다.
베트남에 와서 처음으로 물건값을 깍지않고, 부르는 가격이 시중 가격의 10배 이상임을 짐작하면서도 물건값을 흥쾌히 지불했다.
여유만 된다면 더 사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으나, 지갑 3개에 60만동을 지불하는 것으로 산길을 걷다가 담벼락을 마주보며, 겨우 두달된 아기와 새벽부터 험한 산을 내려왔다가 아기를 바닥에 한번도 뉘어 보지도 못한채로, 젖을 물리고 심지어는 산길을 걸으면서 젖을 물려야 하는 아직 애띤 소녀티도 벗지 못한 소녀엄마가 아기를 잘 키우는데 작은 응원이 될거라 자위하기로 했다.
한참을 있다가 소녀엄마는 실로짠 팔찌 3개를 선물이라고 수줍게 내밀었다.
영어를 곧잘 하기에, 영어는 어디에서 배운거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적은 없지만, 장사하는데 필요한 말은 다른 사람들이 영어로 말하는걸 "리퍼런스(참조)"했다고 한다.
즉, 다시말하면 어깨 너머로 배워서 생업에 꼭 필요한 듣기와 말하기를 하게된거라서 읽기와 쓰기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짠해졌다.
그렇게 점심을 하고, 이번 여행에서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사이공맥주를 한캔 했더니, 알딸딸한것이 한순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발은 천근만근이었지만, 호텔버스가 기다리는 타반 까지는 2km 정도 더 걸어야했다.
22살 가이더가 대부분 라우차이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한 일행들을 데리고 가고, 나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왔다는 이란인 젊은 부부를, 열살 정도로 보이는 14살 짜리 동생에게 버스타는 타반 까지 길안내를 하라고 하여 넷이서 타반 까지 무거운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 도착했다.
버스가 주차해 있는 곳으로 가기 직전에 14살 아기같은 소녀는 손에 들고 온 이동상점의 문을 열었다.
머리띠 한개를 고르고, 오십만동 짜리 지폐만 남기고 4만동 정도의 잔돈을 모두 건네주니 소녀는 흡족스러운 밝은 표정으로 오던 길을 뒤돌아 가고, 우리는 호텔 버스에 올라 졸며 자며 호텔에 돌아왔다.
다시는 걷고 싶지않은 진흙길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험지 18.5km의 트레킹은 작년 봄 올레길을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오후 8시 까지 20, 21, 1코스의 약 40km 걸었을 때보다 오늘이 훨씬 더 힘이 들었던거 같은 오늘의 트레킹이었다.
내일은 날씨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판시판산을 올라갔다가 하노이로 복귀했으면 싶다.
그런데, 힘들었던 기억의 저 편에는 블랙몽족 여인네들의 아주 세련된 고객감성 건드리기 마케팅이 돋보였다.
영어도 어깨 너머로 배운 그녀들이 마케팅교육 전문가에게 사사를 받았을리 만무하건만, 무한 서비스를 표시 안나도록 자연스럽게 제공하고, 고객들 스스로가 지갑을 열게 만드는 그들의 무한 고객감동 마케팅 기법은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추천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듯 했다.
거액을 들여 강사를 초빙한다던지, 해외로 교육 보내기 보다는 사파의 블랙몽족 여인들의 생존 현장으로 직원들을 여행보내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교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노이·사파·닌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낭에서 폭우와 함께 하노이로 (0) | 2018.12.10 |
---|---|
사파(SAPA)의 판시판산 정상에서 안개에 파묻히다. (0) | 2018.10.18 |
사파(SAPA)의 소수민족 마을의 하나인 캇캇(CATCAT)마을 탐방기 (0) | 2018.10.16 |
사파(SAPA)로 (0) | 2018.10.16 |
닌빈(Ninh Binh)의 짱안(Trang An) - 바이딘 사원 (0) | 2018.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