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중3때 고입연합고사 준비한답시고 친구들과 일요일 마다 새벽에 남산도서관에 올라와 밥먹고 엎드려 자다 오후 일찍 나와 팔각정 까지 한바퀴 돌고 귀가하던 그시절이 생각나서 남산 둘레길을 한바퀴 돌 심산으로 느지막이 집을 나서 지하철 3호선 동국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왔다.
장충단공원을 가로질러 시작되는 남산 둘레길......배호의 안개낀 장충단공원과 장충동 왕족발이 먼저 떠오르는 장충단.......
그런데,
장충단공원 입구에 세워진 장충단비를 읽어 보고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살해된 지 5년 뒤인 1900년 9월, 고종은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장충단을 꾸며 사전(祠殿)과 부속건물을 건립, 을미사변 때 순사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일제가 공원으로 꾸며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려는 음모가 숨어 있었음에 많이 놀랐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으로 만든 일제의 만행이 여기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준열사의 동상이 예사롭지 않게 세워져 있었고, 앞으로는 장충단공원이라고 부를 수가 없을것 같다. 아니, 그렇게 불러서는 안되겠다.
장충단은 일제의 침략과 만행에 맞서다 산화한 영령들을 제사하는 곳으로 우리민족의 정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우리민족의 성지중의 성지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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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껍질로 산책로를 깔끔하게 시작하게 한 둘레길은 많은 공을 들여 조성했음을 한 눈에 느끼게 했다. 또한, 도심에 이렇게 잘 보존된 둘레길이 있음에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와 곤충들의 합창으로 남산둘레길은 이미 도심속의 숲이 아닌 태고의 오염되지 않은 정글과도 같았다.
비록 인공수로를 타고 흐르는 작은 계곡물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운치있게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는 남산둘레길의 백미로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고풍스런 여유있는 문화가 깊은 인상으로 남겨지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부턴가 남산하면 떠오르는 목멱산방은 지인들과 자주 찿던 명소가 되었다. 서울을 찾는 와국인들에게 우리의 전통 음식을 맞보여 주기 위해 2009년 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기 시작했던 이곳은 평일 점심에는 외국인 보다도 근처의 직장인들에게도 인기있는 음식점이 되었다. 산방비빔밥을 한그릇 뚝딱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시사철 정겨운 곳이 바로 이곳 목멱산방이다.
목벽산방을 나와 남산둘레길의 마지막 코스인 국립극장 까지 이어지는 벚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길을 만났다. 앞을 볼 수 없는 불편한 사람들도 불편없이 산책할 수 있도록 중앙선에 노란 점자 보도불럭을 만들어 놓은 배려는 마치 봄벚꽃이 만개한듯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졌다.
멀리 북한산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고, 남산타워가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장충단으로 내려오는 계단 너머로 신라호텔이 멀뚱히 서 있다.
장충단의 역사가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가 싶었는데, 졸참도토리와 옥잠화와 꽃무릇(석산)등이 오랜세월 아픈역사와 민족의 정기를 고스란히 간직해 온 것 같아 묵직한 마음으로 장충단비를 스쳐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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