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고창 선운사 꽃무릇

Chipmunk1 2024. 10. 3. 01:55

2024. 09. 30.

예년 같았으면, 꽃무릇이 절정에서 내리막길로 줄달음칠 9월 말이지만, 지긋지긋했던 폭염이 꽃무릇의 가을을 가로막는 바람에 진정한 가을이 시작된 지 오래지 않기에, 정직한 꽃무릇은 거짓 없이 해의 길이와 기온에 순응하여, 달력 기준 조금 늦게 개화하여 축제 일정에 맞춰 꽃무릇을 보러 온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햇볕이 강하면 스마트폰으로 꽃무릇의 정열적인 색감을 제대로 구현하기에 한계가 있고, 추분이 지나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기에, 선운사에 해돋이가 시작될 무렵 햇볕이 거의 없는 한적한 선운산 생태숲의 소나무 아래서 일 년 만에 꽃무릇과 재회의 기쁨을 맛보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일주문 일대의 광활한 꽃무릇 군락으로 가기 위해 잰걸음으로 일주문으로 향합니다.

산사의 해돋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서둘러서 고급 융탄자가 깔린 듯싶은 일주문 주변의 선운사 최대 꽃무릇 군락에서 분주하게 셔터를 눌러 댑니다.

오래지 않아 해가 산을 넘어오고, 꽃무릇들이 눈부셔하면서 햇볕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니, 꽃무릇은 햇볕에 색이 바랜 듯 하릴없이 옅은 주홍색으로 변신을 합니다.

순식간에 해가 쑥하고 올라오니, 해가림이 없는 광활한 일주문 주변의 꽃무릇들은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고, 나그네는 아쉬운 발걸음을 선운사 천왕문 앞 극락교를 향해 돌리면서, 도솔천 계곡에 외로이 피어있는 꽃무릇 아씨들과 잠시 눈맞춤 합니다.

도솔저수지

오랜만에, 선운사 경내를 둘러보고, 대웅전 뒤편 동백숲 아래 피어있는 꽃무릇도 살펴보며 한 시간여 머물다가 도솔천 산책길을 따라 무념무상 걷다가 온통 꽃무릇이 천지 삐까리인 도솔천 계곡이 시작되는 도솔폭포와 도솔폭포에 폭포수를 제공해 주는 도솔저수지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일주문을 향해 내려옵니다.

일주문 옆 공중 화장실 부근의 꽃무릇은 여전히 도솔천 계곡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공중화장실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도솔천 계곡 양쪽의 꽃무릇 군락은 가히 선운사 꽃무릇의 숨은 비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운사 꽃무릇의 유혹에서 벗어날 무렵, 3층 건물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바위에 몸통을 숨긴 채로 줄기와 그 잎으로 바위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노송이 꽃무릇의 호위를 받으며, 의연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기에, 돌다리 건너 노송 가까이 다가가서 내년 봄 동백꽃 필 즈음에 다시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 선운사 꽃무릇과의 짧았던 해후를 아쉬워합니다.

송악이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면서 한마디 합디다.
"會者定離去者必返(회자정리거자필반)"이니
아쉬워 말고 잘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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