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야기

장성 백암산 백양사에도 시나브로 봄이 오고 있습니다.

Chipmunk1 2024. 3. 1. 04:11

아직은  일교차가 심한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간절기지만, 백학봉 아래 호남불교의 요람 천년고찰 백암산 백양사에도 봄기운이 살랑살랑, 나그네의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에 시나브로 온기가 더해지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이 내리 비추니 갑자기 몰려오는 때 이른 춘곤증에 아무 데나 누워도 꿀잠이 올 듯합니다.

일광정 앞에 약수천을 가둬놓은 작은 호수에 햇살이 가냘픈 윤슬을 만들고, 한 달 전만 해도  얼음으로 두텁게 덮여있던 가상자리에는 파릇파릇한 기운이 감돌아, 어느새 봄이 멀리 보이는 백학봉 까지 진격한 점령군이 되어 척후병을 미리 보내온 듯합니다.

양떼구름이 살짝 머물고 있는 백학봉이 포근히 감싸 안은 쌍계루가 오늘은 완전체의 쌍둥이처럼 그림 같은 데칼코마니를 만들며, 얼어붙어있던 약수천 맑은 물속의 또 다른 백학봉과 쌍계루가 오늘만큼은 한층 더 선명하게 보이니, 어느 것이 땅 위에 있는 것이고, 어느 것이 물속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쉬이 가지 않는 봄기운이 충만해져 가는, 거꾸로 봐도 쌍계루, 바로 봐도 쌍계루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쌍계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숨쉴틈도 없이 한걸음에 달려오는 사천왕문 왼편의 청운당 앞 작은 연못에는 한두 번 남아있는 꽃샘추위 때문인지, 동절기마다 연못 속의 비단잉어가 얼음에 갇힐까 쳐놓은 그물망이 아직 그대로지만, 그물망 속에 또렷하게 파란 하늘과 백학봉이 그림 같은 데칼코마니를 만들어 내니, 연못 위에 얼음이 가득해 보여주지 않았던 한 달 전 백학봉의 데칼코마니가 그물망 아래 선명히 나타남은 봄의 화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려주려는 듯싶습니다.

청운당 앞 연못을 뒤로하고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 담장아래 수양매화가 정열적인 빨간 꽃망울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부풀어 오르고, 역시나 좀 더 가까이 다가 온 백학봉이 깨금발로 서서 담장아래 수양매화의 부풀 대로 부풀어버린 꽃망울이 터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담장너머에서 수양매화를 은근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수령이 350살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양사의 살아있는 보물인 천연기념물(2007년에 지정된 제486호) 고불매가 꿋꿋하게 한 달 후에나 만개할 꽃망울들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듯, 벌써부터 나그네를 설레게 합니다.

남쪽 지방뿐만 아니라, 백양사 경내 곳곳에도 피기 시작한 매화들과는 달리, 지조 있는 고불매는 기상이변으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져서 꽃들이 일찍 개화하든 말든 매년 3말 4초에 만발하니, 올해도 변함없이 고불매 축제는 3월 31일과 4월 1일에 걸쳐 치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불매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고고한 자태는 그때 가서 다시 만나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제 막 만들기 시작한 올망졸망한 꽃망울에 만족하기로 합니다.

올해도 여지없이 대웅전 왼편 경사진 산 아래 비탈에 서 있는 청매가 상아빛깔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백양사의 봄이 시작됨을 알리려는 듯, 큰 키로 대웅전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함박웃음 짓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눈에 잘 띄는 청매와는 달리 키 작은 홍매가 세인들의 눈에 보일 듯 말 듯 산비탈 그늘에 서서 수줍게 한송이 두 송이 꽃망울을 터뜨리니, 비록 남쪽 지방의 홍매보다는 덜 화려하고, 고불매와 수양매화와 청매에 치여 세인들의 관심 밖에서 산비탈에 숨어 피지만, 나그네만큼은 스님들한테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고 산비탈을 낑낑거리고 올라 홍매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흐뭇하게 홍매와 백양사의 봄맞이 축제에 마침표를 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