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02.
변산 마실길 2코스 안내 표지판을 작년과 같은 날에 다시 본, 우연치고는 범상치 않은, 마치 등 뒤에서 날아오는 피할 수 없는 화살을 맞은 것 같은 붉노랑상사화와의 숙명적인 만남도 어느덧 네 번째로 이어집니다.
물론, 잎이 나오는 모습을 보려고 왔었던 봄과 꽃이 떨어진 붉노랑상사화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어 찾았던 늦은 가을까지 포함한다면, 처음 변산 마실길 2코스를 걸었던 2019년 8월 31일(그때는 고사포해수욕장에 주차를 하고 송포항 까지 트레킹함) 이래로 열 번 정도는 찾았던 낯익은 송포항 갑문 위에 주차를 하고, 붉노랑상사화가 어디까지 마중 나와 있을는지 궁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혹시 올해는 폭염 속에 꽃이 이미 시들어 버린 건 아닌지 걱정도 하면서 마실길로 접어듭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붉노랑상사화의 자생지이기에, 요즈음은 붉노랑상사화를 볼 수 있는 수목원이 꽤 여러 곳이 있고, 같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에 있는 내소사의 전나무숲길에서도 만날 수는 있지만, 노루목상사화길에서 붉노랑상사화를 만나야 진정한 붉노랑상사화와의 만남을 갖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아닌 나그네의 붉노랑상사화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기에, 앞으로도 철학이 변치 않는 한 붉노랑상사화를 만나기 위한 여행은 계속 이어지지 싶습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노루목상사화길에 접어들면 철조망에 매달아 놓은 방문객들의 흔적들이 사랑과 소망으로 이어지고, 드디어 붉노랑상사화가 한송이 두 송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가볍게 반겨줍니다.
해안길이 조금씩 가팔라지면서 붉노랑상사화가 혼자는 외로운지 작은 무더기를 이루면서 나그네를 점점 더 설레게 합니다.
해수욕보다는 조개잡이에 열중인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변산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새만금이 뒤로 보이는 사랑의 낙조공원과 아스라이 새만금 끝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고군산군도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서해의 풍광을 한눈에 담고 숨을 고르며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금 붉노랑상사화가 기다리는 노루목상사화길의 경사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산등성이마다 점점 밀도가 높아지는 끊김 없이 이어지는 붉노랑상사화의 군락이 나그네의 심장박동수를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시킬 수 없는 나그네의 바쁜 마음은 어느 한 곳 절경이 아닌 곳이 없는 노루목상사화길에게 마음을 온전히 무장해제 당한 채로 나사가 풀린 듯이 흡족해하는 미소는 잠시도 떠나 줄을 모릅니다.
붉노랑상사화가 급하게 깎아지른 해안을 타고 빼곡하게 노란 숲을 이루고, 손님처럼 찾아온 위도상사화에게 너른 언덕을 기꺼이 내어주니, 비탈진 험지에 옹기종기 모여 위도상사화를 돋보이게 할 줄 아는 붉노랑상사화의 넓은 아량과 배려가 노루목상사화길 위에 화합과 사랑을 하나로 묶어 현실 세계가 암울한 나그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노루목상사화길 위의 위도상사화와 붉노랑상사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넓은 아량과 배려로 승화시켜, 서로의 잘잘못만 따지다가 모두를 위해 진정으로 화합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탐욕덩어리들에게 보란 듯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화합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음에 나그네의 마음은 실로 오랜만에 흐뭇해집니다.
위도상사화에게 내어준 언덕 위 너른 광장을 제외하고는 고사포로 가는 길에 놓여있는 흔들 다리에 이르기까지 오밀조밀하게 이어진 붉노랑상사화와 함께하는 해안오솔길이 아름다움을 넘어 정겨움이 더해집니다.
흔들 다리를 반환점으로 찬찬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놓쳤던 붉노랑상사화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출발했던 송포항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나그네가 뽑은 노루목상사화길의 으뜸 풍광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2023년 노루목상사화길 탐방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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