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10

제주로 가는 길

2024. 12. 15.반복되길 원치 않는 혼란스러웠던 시간들로 말미암아, 겨울 여행을 가야 되나 접어야 되나 고민스러웠던 열흘 남짓한 기간이 나그네에게는 내심 갈등과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완전하지 않은 채로, 일단은 안심하고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직 완벽하다 하기엔 이른, 넘어야 할 큰 산들이 앞에 놓인 불안한 심정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여 준비해 온 제주로의 겨울 여행을 시작하기 위하여 갑자기 몰려온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설렘을 앉고 겹겹이 껴입은 익숙하지 않은 아둔해진 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탑승구가 변경되었다는 안내를 받고, 1층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 선명하게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김포 상공을 날아올라 ..

여행 이야기 2024.12.17

소쇄원의 봄 스케치

2024. 04. 01.기묘사화의 희생양 조광조를 떠올리는 소쇄원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일컫는 소쇄원에도 어느새 봄이 찾아와 상하지 연못 앞을 스쳐지나 외 나무다리 약작을 건너 광풍각을 지나 제월당 앞마당의 홍매와 뒤꼍의 매화는 자취를 감추고 온갖 봄꽃들이 소쇄원을 꽃동산으로 만듭니다산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이 소쇄원 담장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광풍각에 오기 직전 폭포를 이뤄 산새소리와 더불어 은은한 화음을 연출합니다광풍각 뒤꼍의 바위틈에는 제비꽃이 옹기종기 스승 조광조를 기리는 소쇄공 양산보의 정성이 제비꽃으로 환생한 듯 봄볕에 파안대소합니다상하지 연못 앞 광풍각 앞을 흐르는 계곡물 건너 산자고 군락이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통탄하듯 붉은 분노를 꽃잎 뒤에 숨긴 채 옅은 분홍꽃잎을 활짝 열고 오백 년을..

여행 이야기 2024.04.14

모악산 금산사의 봄

2024. 03. 27.시원하게 펼쳐진 모악산 계곡을 지나 잘 정돈된 개나리 길을 따라 무념무상 모악산 천년고찰 금산사의 봄을 찾아 목련이 성글게 이어진 산책로를 지나 계곡 위 다리 건너 천왕문을 지납니다사방이 툭 터진 천왕문과 선제루 사이 너른 광장이 끝나는 선제루 왼쪽에는 기대에 부응하듯 탐스러운 백목련이 아니 목련이 금산사의 봄을 알립니다선제루를 바라보며 의연하게 서있는 함박 핀 키다리 목련의 그윽한 눈빛이 목련 꽃피기를 학수고대하던 속세의 오염된 영혼들의 권모술수와 탐욕을 잠재우고 은은한 향기로 다독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 번 다시 탐욕과 정쟁을 위해 목련뿐만 아니라 순수한 꽃과 자연이 소환되지 않기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다 해도 자연만은 꽃만은 그러하지 않습니다하늘을 우러러 한..

봄 이야기 2024.04.09

제주의 겨울을 찾아서(10) (소낭머리의 아침풍경)

2024. 01. 11.제주여행 마지막 날 허락된 해돋이를 맞으러 새벽 다섯 시 반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지난가을에 우연히 알게 된 소낭머리 전망대로 향합니다. 올레길 2코스 시작점인 광치기해변의 4.3 추념비를 필두로 19코스의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비롯한 제주 전역 곳곳에는 70여 년 전 당시 제주 인구의 11%에 달하는 3만 명 가까운 양민들이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이념의 희생양이 된 참혹한 현장들이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전쟁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한 한 만은 세월 속에서 소낭머리 공원 역시 수많은 유적지 중의 한 곳으로 남아있어, 이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의 한이 붉은 피를 토했던 그 자리에서 이 겨울에 ..

제주도 이야기 2024.01.22

꽃은 정직합니다

적당한 기온과 알맞은 햇살만 비춘다면 꽃은 언제 어디서나 활짝 웃고 있지요. 일월초에 제주에서 처음 본 매화가 장성의 백양사에서는 일부 피기 시작했지만 광교산 자락에서는 아직 춘래불사춘에 어울리게 오랫동안 파란 꽃망울에 조금씩 하얀 속살만 키우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이래로 피기 시작한 제주의 동백이 이제는 점점 시들고 있지만, 장성 백양사의 대웅전 오른쪽 언덕에 서있는 동백은 금세라도 터질 듯 부풀어 있습니다. 삼월의 끄트머리가 되면 고불매와 함께 만개할 동백을 기다리며 백양사의 봄기운이 조금씩 조금씩 약수천을 타고 백학봉으로 올라가면서 동백의 꽃봉우리를 톡톡 건드립니다. 아직은 미완인 동백과 새벽 한파를 녹인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백양사 동백 언덕에서 봄을 찾아봅니다.

봄 이야기 2023.03.01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는 동백의 꽃말입니다. 세상에는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음식 같은 사랑도 있지만, 반면에, 가마솥의 곰탕처럼 오랫동안 혼자 속만 끓이다가 덧없이 끝나버리는 안타까운 사랑도 있습니다. 아마도 동백은 여름 내내 내색도 못하고 애가 닳도록 누군가를 흠모하다가, 찬 바람이 부는 한 겨울에 살포시 아름답게 피어나, 봄이 올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애끓는 사랑을 품고 견디다가, 끝내 홀로 애달픈 생을 마감하는 우직한 사랑의 그림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집에 온 동백도 어느덧 이십 년 가까이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습니다. 야리야리하던 동백이 이젠 제법 의젓한 근육질 나무로 단단하게 잘 성장해 있습니다. 때로는 나도 그런 동백으로 거듭나고 싶을 때..

꽃 이야기 2023.02.08

💐겨울꽃이 참 예쁘다💐

지난 며칠간 폭설과 한파로 몸살을 앓고 세상은 온갖 이슈들로 조용할 날이없다. 서로 충돌하고 헐뜯는 갈등(葛藤) 속에서 그나마 평행선이 빠르게 점점 더 벌어진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엔 절대 귀 기울이지 않고 내 입장만 내세우는 불통(不通)의 섬에 갇혀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시기가 도래하면 제 할 도리를 다 한다. 꽃은 더 예쁘게 피려고 애 쓰는 일도없다. 꽃은 누가봐도 한결같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끔씩 꽃이 이쁘지 않게 보이는 것은 보는 이의 간사해진 변덕 때문일 게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이 무엇인지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 의연한 삶이 무엇인지 비로소 꽃에게서 배운다. 그래서 꽃과 대화하는 시간이 되면 세속의 탐욕도 근심도 멀리 떨쳐버리고 가벼워진 영혼으로 평안을 얻는가 보다...

꽃 이야기 2022.12.20

최강 한파속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는 휴일 아침이 무한 행복한 나의 단상(斷想)

음지(陰地)가 있으면 양지(陽地)가 있고, 슬픔(悲哀)이 있으니 기쁨(喜樂)도 있는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따뜻한 봄이 되어야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찬바람이 불어야 피는 동백을 보라. 사시사철 쉬엄쉬엄 꽃이 피는 장미를 보라. 폭염속에 피었다가, 가을을 지나 한겨울에도 떠나지 못하는 흰눈속의 메리골드를 보라. 한겨울에 노란 꽃망울을 틔우다가 봄이면 온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초여름 부터 열매를 맺어 여름내내 빠알갛게 익어가는 산수유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빠알간 열정으로 새로운 꽃망울이 진눈개비를 맞아 보석처럼 반짝일때 까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시들지않은 희망을 보라. 이른 봄이면 파릇파릇 싱그러운 새싹이 돋아, 늦은 여름이면 열흘정도 만개하는 보랏빛 맥문동이 가..

나의 생각 2022.12.18

어느덧 동백의 계절이 제주를 찾아옵니다.

아직도 곳곳에 가을이 남아 있는데 겨울이 성급하게 동백을 앞세워서 다가옵니다. 서귀포시 토평동의 3층 숙소 창가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원 숲 속에서 낯익은 빠알간 동백이 방긋 웃고 있습니다. 동백이 핀 제주의 가을은 전혀 이상할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꽃망울이 맺힌 동백나무가 지금 부터 5-6개월 동안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겠지요. 숙소 정원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근 조금 규모가 있어보이는, 그러나 텅텅 빈듯한 건물 뒷켠의 돌담을 에워싸고 피기 시작한 동백에 매료되어, 새벽에 내린 비가 종일 꾸물꾸물한 제주도 다운 날씨가 지난주 까지 제주답지 않게 화창했던 2주간의 날씨와 달리, 을씨년스러운 불금에 빠알간 동백과 분홍 동백이 구름에 갇힌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터질듯 부풀어오른 동백..

제주도 이야기 2022.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