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 05.
노파심에 새벽 네시로 알람을 맞춰놓았다가, 새벽 세시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알람을 껐다.
다섯 시 사십 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첫 버스를 타고,
신논현역에서 김포공항행 두 번째 급행열차를 타고,
여덟 시 삼십 분에 제주발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 봄보다는 훨씬 나은 듯 보이지만, 미세먼지란 녀석이 비행기 날개만 겨우 보이게 하고, 아름다운 서울 상공을 나의 시야에서 빼앗아 버렸다.
비행기의 고도가 제법 높아질 무렵,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하늘길을 환하게 열어준다.
마치 설원 위를 날아가듯 구름인지 눈 덮인 설원인지 잠시 혼동하다가, 착시 상태를 극복할 즈음, 잠시 후 제주공항에 이륙하겠다는 기장의 멘트가 기내 방송을 탔다.
구름 사이로 언듯 언 듯 바다가 보이고, 작은 종이배 같은 배들이 날듯이 바다 위를 질주하는 다이내믹한 모습에, 어쩌면 한라산이 어렴풋이나마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온 신경을 창밖에 쏟아보지만, 제주까지 덮어버린 미세먼지가 서울 상공에서의 못된 짓을 제주 상공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제주에 도착했으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지금부터는 미세먼지와 더 이상 다툼 없이, 새해 첫 여행지가 된 제주에서 마음도 키우고, 제주의 겨울을 온전히 만끽하고 소중한 추억을 가득 담아 올 수 있도록, 오랫동안 간직해 왔지만, 이미 잊히고 흐릿해진 마음속의 오염된 조각들을 전부 포맷팅 시켜놓고, 지금 부터는 마음속에 새로운 추억을 담을 빈 공간인 2023 제주방을 넉넉하게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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