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새해 벽두(劈頭)에 어승생악 실시간 CCTV앞에 서다

Chipmunk1 2023. 1. 8. 05:42

2023. 01. 05.

가끔 제주의 실시간 CCTV에서 즐겨 보던 낯익은 장소에 서서 두 팔을 활짝 펴고 새해 마수걸이 여행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렸다.

비록, 윗세오름을 대신해서 계획에도 없던 어승생악의 즉흥적인 탐방은 어쩌면 하늘의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탐방로의 길이가 영실 탐방로 보다 많이 짧을 뿐, 난이도 면에서나 쌓인 눈의 정도가 결코 윗세오름에 크게 뒤지지 않았고, 윗세오름에서 바라보이는 백록담 북벽이 그리 멀리 보이지 않음은, 마치 위세오름에 오른듯한 묘한 설렘이 함께 했고, 설산 한라를 만끽했던 4년 전의 그 느낌이 그대로 돼살아나는 듯했다.

영실 탐방로와 마찬가지로, 1.3km의 전 구간이 거의 나무데크길로 이루어진 어승생악 탐방로는 녹을 틈도 없이 연일 내린 눈으로 겹겹이 뒤덮인 나무데크 바닥이, 우거진 숲의 그림자로 인해 한동안 맨살을 보이지 않을 듯싶다.

어승생악의 막바지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서니, 생각보다 많은 남녀노소 탐방객들이 북적였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남녀 커플들의 모습과, 아이를 등뒤에서 사랑스럽게 끌어안고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모자의 모습에서, 언뜻 나의 옛 추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 나려 했지만, 너무 오래된 옛 기억들이 이제는 끄집어내기 조차 쉽지 않게 가물가물하니, 하릴없이 느껴지는 인생의 무상함에 혼자 쓴웃음을 짓곤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눈길에서 설설 기며 내려가는 사람들과 아예 배를 깔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해맑은 아이들과 말리거나 야단침 없이 오히려 아이들의 천진함을 바삐 쫓아가며 영상에 담는 젊은 부모들의 웃음꽃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 읽혔다.

오래 지나지 않아 탐방로 입구에 다달을 즈음, 신발에 부착한 채로 아이젠에 붙어있는 눈을 비치된 에어건으로 말끔하게 제거하니, 아이젠은 착용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고, 아이젠 덕분에 무탈하게 잘 다녀온 어승생악 탐방은, 새해 마수걸이 여행의 서막 치고는 꽤 괜찮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남은 여행은 물론이고, 새해가 연말이 될 때까지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칭찬하고 위로하는 따스한 마음을 스스로에게도 아낌없이 쏟고, 주변과도 나누는 소소하고 무탈한 날들로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