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바깥기온이 쌀쌀하게 느껴졌지만 하늘은 나무랄데 없이 청량하기만한 전형적인 가을에 홀로 장생의 숲길이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에 왔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 친구들과 함께온 어르신들, 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서로 찾고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 절물자연휴양림 입구의 풍경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작년봄에도 이런 안내문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서둘러 돌고 나와야겠다는 조바심이 들어 지체없이 숲길 입구를 통과했다.
그리고, 숲길에 들어서자 마자 서둘러야겠단 급한 마음은 뒤로한 채, 피톤치드의 보고에서 이제 막 울굿불긋 물들기 시작한 숲길에 빠져 몇시간을 허우적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신줄을 놓고 지나다보니, 연리목이 짜잔하고 앞을 막아선다.
장생의 숲길 절반을 지나왔다는 알림목이 바로 연리목이다.
서로 이웃한 나무들이 오랜시간 부딪혀서 줄기가 만나 하나로 거듭나는 연리목은 오랫동안 변치않는 사랑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나무라서 보기만해도 흐믓하다.
가을의 시작은 연리목을 지나면서 눈으로 확인되고 있었다.
목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도록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붉게 익어가는 나뭇잎의 황홀함에 취해 경추가 뻣뻣해져서 제자리에 갖다놓기가 아둔할 만큼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버렸고, 그 사이 어마어마한 숲의 피톤치드와 자외선이 걸러진 양질의 비타민 D가 마구마구 피부를 타고 온몸 깊숙히 파고 드니, 장생의 숲길을 걸으면 무병장수 한다는 이야기에 믿음이 갔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 십년의 덤 건강은 보장 받은듯한 좋은 느낌이 뇌에 저장되었다.
걷는 동안 물 한모금 안 마셨어도 생생 발기 충만해진 발걸음이 많이 아쉽지만 숲과 작별을 하고, 절물자연휴양림 입구를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 뒤돌아 보고 또 돌아 보며 연못을 지났다.
앙증맞은 낑깡 만큼이나 작은 감이 이 가을의 파수꾼 처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 곳을 묵묵히 지키고 서있다.
일등만이 최고인 처절한 전쟁터에 내팽겨쳐 살고있는 현대인들의 힘든 마음이 작고 보잘것 없는 감나무에 잠시 머물러 위로받고 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못난이 감나무가 내 귀에 대고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나도 사는데.........."라고 속삭이는것만 같았다.
이렇게 푸근한 절물자연휴양림에서 예쁜 가을을 만나, 가을은 그대로 장생의 숲길에 남겨놓은 채로 나만 살짝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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