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병산서원의 늦여름 아침풍경

Chipmunk1 2024. 8. 26. 04:14

2024. 08. 15.

절정을 막 지나버린 배롱나무 꽃이 여전히 병산서원을 에워싼 채로 늦여름 역대급 폭염을 동반한 햇살이 비추기 전,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반갑게 맞으며, 굳게 닫힌 병산서원 대문 격인 복례문을 열고 아직은 인적이 없는 병산서원의  광복절 아침 첫 방문자가 됩니다.

복례문 앞의 배롱나무에는 여전히 붉은 꽃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학업에 정진하던 그 옛날 선비들의 뜨거운 열정이 그대로 숨 쉬고 있는 듯합니다.

복례문 앞에서 낙동강 건너 병풍처럼 둘러 서있는 병산(屛山)을 바라보노라니, 멋진 시상이 떠오를만한 해 뜰 녘 풍경이 배롱나무꽃을 한층 더 붉게 물들이고, 좋은 시구라도 한 구절 떠오를 듯 말 듯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 요동칩니다.

병산서원의 중심이 되는 강당 입교당 앞에는 무궁화가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기숙사 동직재와 정허재에선 선비들의 새벽 글 읽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멀리 민가에서 들려오는 수탉의 훼치는 소리에 병산서원의 아침이 시나브로 열리고 있습니다.

글을 읽다 지친 선비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입신양명을 꿈꾸던 만세루 아래 광영지에도 아름답게 휘어진 배롱나무가 연못 위에 꽃잎을 떨구며 폭염 속 늦여름의 아침을 시작하려 합니다.

병산서원 배롱나무꽃의 절정은 입교당 뒤뜰 후학들이 건립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를 모시는 병산서원의 상징인 존덕사(尊德祠)로 통하는 신문(神問)을 중심으로 수령이 사백여 년이나 된 고령의 다섯 그루 배롱나무가 기품 있게 서있습니다.

안동지역의 선비들에게 닭 볏 같은 벼슬아치의 모자를  쓰고 빨간 관복을 입고 입궐하는 꿈을 심어준 배롱나무꽃이 이 여름에도 돈화문을 지나 임금님이 계신 창덕궁 인정전을 우러러 화산과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는 부용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참개구리들이 배롱나무꽃이 떨어져 떠다니는 광영지에서 행복한 광복절의 아침을 축하하려는 듯 자유롭게 꽃 참개구리로 거듭나는 병산서원의 광복절 아침이 시나브로 폭염 속에 밝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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