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3. 14.
언제부턴가 곽지해수욕장에서 애월카페거리로 가는 한담해변산책로가 시작되는 부근에 갈매기 대신 가마우지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바다의 깡패처럼 영역을 지키고 있고, 갈매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곽지해수욕장이 막 끝나는 지점에서 가마우지 세 마리가 암컷을 사이에 두고 수컷이 암컷에 구애를 하는듯한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의 수컷과 암컷이 한참 사랑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부러움 반 질투심 반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왼쪽의 수컷이 마냥 쓸쓸해 보입니다.
그러다, 왼쪽의 수컷이 결심을 한 듯, 조금 높은 바위에 올라서서 커플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커플은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왼쪽의 가마우지는 무시한 채 꽁냥꽁냥 꿀이 뚝뚝 떨어지는 하트빛 두 눈을 서로에게 집중하며 마냥 행복해합니다.
급기야 왼쪽의 수컷 가마우지가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며, 오른쪽 수컷 가마우지에게 경고를 하듯 날개를 활짝 편 채로, 오른쪽의 아담한 수컷 가마우지를 향하여 무력시위를 하듯 날갯짓을 몇 번 해 보이니, 그제야 커플은 놀라 어쩔 줄 몰라하고, 무르익어가던 커플의 애틋한 사랑도 서서히 종말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컷 가마우지는 오른쪽 수컷 가마우지에게 날 두고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가벼운 날갯짓으로 애원을 하는 듯 보이고, 왼쪽 가마우지는 짐짓 모르는 척 오른쪽 수컷에게 암컷과 작별할 시간을 주는 배려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윽고, 가엾게도 오른쪽 수컷은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왼쪽의 수컷이 사방을 둘러보며 암컷을 차지했음을 선포라도 하려는 듯 보입니다.
그제야 암컷은 고개를 들어 자세를 낮추고 덩치 큰 수컷의 구애를 하릴없이 수락한다고 하는 듯 보입니다.
잠시 서로의 몸을 치장할 시간을 갖는 듯 부리로 털을 고르며, 새로운 사랑을 맞을 채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둘은 마침내 하나가 되고, 수컷은 암컷을 등뒤에서 한껏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합니다.
마치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를 듣고 있는 신랑신부처럼 단상을 향해 서있는 듯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수컷의 품에 안겨 행복에 젖어있는 암컷은 종전의 아담한 수컷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덩치 큰 수컷에게 온몸을 맞긴 채로 수줍은 새댁이 되었습니다.
새로 짝을 만난, 가마우지 커플이 오래도록 알콩달콩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잠시도 곁을 벌리지 않고 붙어 있는 가마우지 커플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수컷의 넉넉한 품에 안긴 암컷은 종전의 수컷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포근함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덩치 큰 수컷이 오래도록 암컷을 잘 지켜주고 사랑해 주라고 나그네는 마음속으로 사랑스러운 커플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두해 전, 우리 민초들에게도 덩치가 크고 배려심 있는 멋진 보호자가 생긴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는 처참해지고, 암울한 현실만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말도 안 되는 시간들로 점철되고 있고, 그나마 품고 있던 마지막 작은 희망도 떠나 버렸으니, 우리 민초들에게도 진정 의지가 되고 온몸을 맡길 수 있는 새로운 수컷 가마우지가 돌아오기를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마음으로 학수고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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