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9. 22.
고창을 지나 영광에 들어서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도로변에 마치 오래전 신촌서 시외버스를 타고 강화도 마니산으로 등산 다니던 시절, 강화도에 들어서서 전등사가 가까워오는 길가에 피어 시외버스가 지나가며 일으키는 바람에 하늘하늘거리던 토종 코스모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소환될 정도로 곱디고운 붉은 꽃무릇이 영광에 온 걸 환영한다고 쌍수 들어 반겨주는 듯싶습니다.
굳이 꽃무릇 축제장을 찾아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영광군 전체가 작정을 하고 꽃무릇을 관내 전체에 식재해 놓은 듯 영광은 온통 꽃무릇이 지천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꽃무릇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 대신 상사화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영광에 들어서면서부터 곳곳에 걸려 있더니, 막상 축제장에 도착하니, "제23회 불갑산상사화축제"라는 아치가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축제장 입장권(입장료 3,000원에 해당하는 축제장에서 사용가능한 영광사랑상품권을 제공함)에도 상사화축제라 인쇄되어 있었고, 축제장에 입장해서 꽃무릇 길을 걷는 중간중간 세워진 안내판에도 버젓이 "불갑산 상사화"란 타이틀 밑에 작은 글씨로 "꽃무릇, 붉은 상사화"라고 인심 쓰듯 적혀 있습니다.
공식적인 식물도감에 있는 상사화의 종류에도 없는 억지스러운 붉은 상사화란 명칭을 근거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상사화와 꽃무릇의 특징을 그럴듯하게 섞어 놓아 꽃무릇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상사화와 꽃무릇을 분간하기 곤란해하는 주변의 지인들을 봐 오던 차에, 방문객들에게 조차 꽃무릇을 상사화로 소개하는 것이 마뜩지 않은 마음에 나그네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오지랖인 줄 알면서도 영광에서 돌아온 지 나흘쯤 지난 후에 영광군 문화관광과가 축제 담당부서임을 확인하고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습니다.
담당공무원의 친절한 전화응대를 받자마자, 지난주 축제장에 갔던 사실을 알려주고, 영광과 이웃한 고창의 선운사와 함평의 용천사는 물론이고, 경상도 함양의 상림숲과 경기도 성남의 중앙공원등에서도 꽃무릇축제라고 하던데, 유독 영광에서만 꽃무릇을 꽃무릇이라 부르지 않고 상사화라 부르는 피치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전화했노라고 겸연쩍어하며 통화를 시작했습니다.
담당공무원은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꽃무릇과 상사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축제를 처음 시작할 즈음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축제 명칭에 대한 자문을 받았었는데, 참석했던 모 대학의 교수님이 꽃무릇을 상사화라 불러도 괜찮다는 자문을 받고 축제명칭을 확정한 거라는 친절한 답변을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나그네는 통화를 이어갔습니다.
불갑산 상사화라고 되어있는 안내간판에 기술되어 있듯이, 꽃무릇도 상사화와 마찬가지로 꽃과 잎이 나오는 시기가 서로 달라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상사화는 이른 봄에 잎이 먼저 나오고 잎이 진 여름에 꽃이 열흘 남짓 피는 반면에, 꽃무릇은 이른 가을에 이십일 정도 꽃이 피었다가 늦은 가을에 잎이 나는 전혀 다른 종의 꽃이라는 건 아느냐고 묻는 나그네의 질문에 담당공무원은 애매하게 웃으면서 답변을 못하고 업무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몰랐다고, 꽃무릇이 상사화의 종류인 줄 알고 있었다고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물론, 꽃무릇이 수선화과 상사화속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상사화는 나리와 비슷하게 생겨 백합목으로 분류되며 개난초라고도 부르지만, 꽃무릇은 상사화와 생김새가 전혀 다른 종의 꽃으로 아스파라거스목으로 분류되며 석산(石蒜)이라고도 부르는데, 붉노랑 상사화와 위도 상사화 자생지로 알려진 변산반도 송포항 배수갑문에서 시작되는 노루목 상사화길에 있는 안내문에 석산(꽃무릇)을 상사화, 붉노랑 상사화, 진노랑 상사화, 위도 상사화, 제주 상사화, 백양꽃등과 함께 국내의 상사화속 식물이라고 비교적 옳게 설명이 되어 있기에, 최소한 "상사화속 꽃무릇 축제"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담당공무원에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나그네와 힘든 통화를 해준 영광군의 담당공무원에게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담당공무원으로서 나그네의 민원 사항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논의해 보겠다고 하기에 내년에는 취지에 맞는 축제명칭을 사용해서 더 이상 상사화와 꽃무릇을 같은 꽃으로 오인하고 있는 상당수 관람객들에게 꽃무릇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https://tglife1.tistory.com/m/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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