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겨울을 부르는 강정포구의 저녁풍경

Chipmunk1 2022. 11. 27. 09:01

2022. 11. 13.

해양의 기후가 변화무쌍한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흐렸다 개였다 종잡을수 없는 저녁무렵 강정포구의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태양은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하고, 몸을 가눌수 조차 없는 강풍에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옅은 구름을 뚫고 비추는 빛줄기가 빛기둥이 되어 파도치는 바다위에 붉은 색감을 얹어주니, 어느 천재화가가 구현한 태초의 천지창조 그림이 현실로 나타난 느낌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녁노을에 물든 한라산 윗세오름의 북벽과 남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강정포구의 겨울같은 가을은 입동(立冬)이 지난지 엿세가 지났으니, 비록 기온은 영상을 유지한다해도, 살을 에는 듯한 강풍을 맞닥뜨리고나니,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음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해안의 나무기둥에 온몸을 의지한 채로 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태풍급의 강풍을 맞으며 태양이 먹구름 속으로 숨었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해양의 저녁풍경을 보면서, 태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건만, 내가 살고 있는 지구별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마치 태양이 뜨고 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것처럼 무한 착각속에서 숨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어느덧 짙어지는 저녁노을이 간혹 옅어진 구름 사이를 헤집고 잠시 빛기둥을 만들어 황홀한 해양의 저녁풍경을 만들다가도, 강풍에 밀린 먹구름이 순식간에 해를 가려 바다인지 구름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아무리 짙은 비구름이 태양을 가린다해도, 변화무쌍한 해양기후에 잠시 흔들리는 옅어진 구름 사이를 뚫고 태양이 바다위로 빛줄기를 내려주듯이, 아무리 굳건하게 마음 먹고 세상을 살아가다가도 가끔씩은 무너져버리는 힘든 시간을 거의 반복적으로 겪는것도 어찌보면, 단단하던 마음속의 면역력이 강풍에 흩어지는 비구름 처럼, 변화무쌍한 세파 속에서 견디다 견디다 무너지기도 하는 거겠지요.

올레길 8코스를 지나는 강정마을 입구에는 아직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건만, 해군기지가 번듯하게 들어서서 어엿한 군사도시가 되어버린 강정마을에는 주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이 건설중이었고, 쿠르즈유람선을 맞을 쿠르즈유람선 터미널과 선착장이 강정마을을 강정해양도시로 둔갑시켜 놓았습니다. 물론, 유사시에는 쿠르즈여객선 터미널과 선착장이 항공모함의 기착지로 활용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세상의 흐름에 둔감했던 강정마을 어민들의 시대착오적인 항거였는지, 보상금을 올려받기 위한 이기심의 발로였는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알수가 없습니다.

다만, 조용했던 강정마을에 거대한 해군기지가 들어섰다는 사실은 강정마을이 이제는 더 이상 강정마을 주민들이 조상대대로 유지해오던 안락한 삶의 터전이 아니고, 유사시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태풍속의 찻잔이 되어버린 현실이 오랜만에 찾아온 강정마을 아니, 거대해진 해군기지가 되어버린 강정해양도시의 현주소로 읽혀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풍급 강풍으로 이미 겨울이 강림한 듯한 강정포구의 저녁풍경 속에서 아직은 좀 더 단단했으면 싶은 내 마음속의 면역력을 잠시 점검해봅니다.